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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1

클레이스테네스의 생애와 업적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클레이스테네스는 무슨 인물인가요?

클레이스테네스의 일대기는 어떠했으며

클레이스테네스가 만든 업적은 어떤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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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클레이스테네스(그리스어: Κλεισθένης)는 고대 아테나이의 민주 정치가이다. 아테나이의 명문가 알크메오니다이 가의 메가클레스와 시퀴온의 참주였던 클레이스테네스의 딸 아가리스테 사이에서 태어나 외조부의 이름을 따라 지었다. 또 그의 동생 힙포크라테스에게 어머니의 이름을 따라 아가리스테라는 딸이 있었고, 후에 그 딸은 아리프론의 아들 크산티포스와 결혼하여 페리클레스를 낳았다. 그는 참주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해마다 한 번씩 시민의 자유에 해를 끼치는 사람을 가려내어, 도자기 조각에 그 이름을 써서 정해진 곳에 넣게 하였다. 그것이 6천 표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을 나라 밖으로 쫓아내는 오스트라시즘(도편추방)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실시하게 하였다. 또한 10부족제를 실시하여 500명으로 되는 평의회 제도 등을 만들어 민주 정치의 기초를 닦았다. 전 시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했으며, 행정구역을 10개 부족구역에서 10개 지역구역으로 개편했고, 솔론이 만들었던 400인회를 500인회로 바꾸었다. 500인회의 인원들은 지역별로 뽑혔으며, 이들은 민회에 제출할 법안 마련 및 최고 행정통제권을 지녔다. 또한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했다.

    출처: 위키백과 클레네스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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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 Kleisthenes나 Clisthenes 등으로도 표기됨)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Athenae)의 정치인으로, 기원전 510년 히피아스(Hippias, 재위 BC 527~510)를 몰아내 참주정(僭主政)을 끝내고, 기원전 508년 이른바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이라 불리는 정치 개혁을 추진하여 민주정(民主政)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이다. 아테네의 귀족 명문인 알크마이온(Alcmaeon) 집안 출신이며, 시키온(Sicyon)의 참주였던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의 외손자이다.

    기원전 6세기 아테네에서는 에우파트리다이(eupatridae)라 불리는 세습귀족과 평민 사이에 사회·경제적 갈등이 심화되었고, 평민들의 불만을 이용해 참주의 지배가 나타났다.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는 기원전 546년 아테네를 무력으로 점령하며 기원전 527년 죽을 때까지 지배했으며, 그가 죽은 뒤에는 아들인 히피아스가 권력을 계승하였다. 클레이스테네스의 아버지인 메가클레스(Megacles)와 알크마이온(Alcmaeon) 일족은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의 주된 정적이었으므로, 그가 권력을 장악하자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 클레이스테네스도 기원전 546년부터 20년 가까이 아테네로 돌아오지 못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인 히피아스는 추방했던 귀족들을 받아들였고,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로 돌아와 기원전 525년부터 기원전 524년까지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archon)을 지냈다.

    그러나 히피아스는 기원전 514년 형제인 히파르코스(Hipparchus)가 암살되자 억압 정책을 펼쳤고, 클레이스테네스는 다른 귀족들과 연합하여 참주의 지배에 맞섰다. 마침내 기원전 510년 클레이스테네스는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 1세(Cleomenes I)의 도움을 받아 히피아스를 아타네에서 추방했고, 세습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이사고라스(Isagoras)와 권력을 다투었다. 스파르타가 이사고라스(Isagoras)을 지원했으므로 클레이스테네스는 다시 아테네에서 추방되었지만, 시민들이 이사고라스에 반대해 일어나자 아테네로 돌아와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기원전 508년 민회와 연합해 민주적 개혁을 추진했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귀족들의 혈연적 특권을 약화시키고 모든 시민에게 완전히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것은 ‘이소노미아(Isonomia)’라고 불렸는데, 평등을 뜻하는 ‘이소(iso)’와 법을 뜻하는 ‘노모스(nomos)’가 합쳐진 것으로서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한다는 원칙을 나타낸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에게 공적인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우선, 그는 전통적인 4부족 체제를 해체하고 거주지에 따라 10부족제로 재편하여 귀족의 권력 기반을 약화시켰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필레(phyle)’라고 불리는 부족을 기본적인 정치 군사적 단위로 하여 구성되어 있었는데, 필레는 독자적으로 관리와 성직자를 거느린 행정 조직이었으며, 군사 조직이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4부족 체제는 가문과 씨족 등 혈연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귀족의 중요한 정치적 기반이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와 그 주변을 포함한 아티케(Attike) 지역을 아테네, 해안지역, 내륙지역 등 3개의 지역으로 나눈 뒤, 이를 다시 에레크테이스(Erechthides), 아이게이스(Aegides), 판디오니스(Pandionides), 레온티스(Leontides), 아카만티스(Acamantides), 오이네이스(Oenides), 케크로피스(Cecropides), 히포톤티스(Hippothoontides), 아이안티스(Æantides), 안티오키스(Antiochides) 등 10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들 행정 구역을 기초로 거주지에 따라 부족을 재편해 귀족이나 성직자의 혈연적 특권을 약화시켰다.

    이처럼 씨족적 4부족 체제가 거주지에 따라 10부족 체제로 재편되자 ‘데모스(demos)’라 불리는 촌락공동체가 정치의 기본 단위로 되었다. 남자들은 18세가 되면 데모스에 등록하여 재산이나 혈연에 관계없이 참정권을 비롯한 시민의 권리와 지위를 평등하게 보장받았다. 데모스는 자연적으로 구성된 촌락을 기반으로 했으므로 크기가 다양했으며, 각 데모스는 인구에 비례해 ‘불레(boule)’라고 불리는 평의회(評議會)에 대표를 선출해 보냈다. 기원전 594년 솔론(Solon)은 400명으로 불레를 구성했는데(400인회), 클레이스테네스는 이를 500명으로 늘리고, 10개의 부족에 각각 50명씩 대표를 할당하였다. 부족들은 다시 인구에 따라 각 데모스에 대표를 할당하여, 촌락공동체인 데모스가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대표 선출의 기반이 되었다. ‘500인회’라고 불리는 불레는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불린 민회에서 토론하고 결정할 안건을 마련하고, 재정 관리나 행정관 선거의 감독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클레이스테네스는 ‘디카스테리아(Dikasteria)’라고 불리는 시민 법정을 설치했으며, 참주(僭主)의 출현을 막기 위해 ‘오스트라키스모스(Ostrakismos)’라고 불리는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 ostracism)를 도입했다. 각 부족마다 500명 이상의 시민이 배심원으로 선출되어 재판에 참여해 사법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민회에서는 도자기 조각으로 투표를 하여 위험 인물을 추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투표 결과 추방에 찬성한 표가 6000표 이상이면, 그 인물은 10년 이상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 도편추방제는 참주가 다시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아테네에서 데모스를 기반으로 한 직접 민주정 체제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개혁의 효과로 아테네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클레이스테네스 [Cleisthenes of Athens/Cleisthenes/Kleisthenes/Clisthene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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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low but steady
    Slow but steady23.05.21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편 추방법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이스 아테네의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귀족들의 혈연적 특권을 약화시키고 모든 시민에게 완전히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하는 목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즉 오늘날의 민주 정치와 비슷 하다는걸 알 수가 있답니다. 이러한 개혁을 이소노미아라고 불렸는데요. 즉, 평등을 뜻하는 이소와 법을 뜻하는 노모스가 합쳐진 것으로서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한다는 원칙을 나타내는 개혁이에요. 먼저 전통적인 4부족 체제를 해체하고 거주지에 따라 10부족제로 재편하여 귀족의 권력 기반을 약화 시켰다고 합니다.
    이렇게 씨족적 4부족 체제가 10부족 체제로 재편되자 데모스라 불리는 촌락공동체가 정치의 기본단위가 되었는데요남자들은 18세가 되면 데모스에 등록하여 재산이나 혈연에 관계없이 참정권을 비롯한 시민의 권리와 지위를 평등하게 보장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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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의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 인물입니다.


    당시 아테네는 솔론의 개혁 이후 BC 546년부터 페이시스트라토스와 그의 아들 히피아스가 대를 이어 참주를 맡게 되면서 큰 혼란에 휩싸였었습니다.


    마침 이들에 의해 쫓겨났던 스파르타 세력들이 참주 타도에 나서게 되자 기다렸다는 듯 클레이스테네스는 앞장을 서면서 권력을 장악했죠.


    클레이스테네스는 어떤 개혁안을 주장했을까요?

    먼저, 혈연 중심의 부족제를 거주지 중심의 부족제로 개편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혈연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또한, 시민 중 500명을 추첨하여 안건을 마련하고 회의를 할 수 있는 기구인 ‘500인 평의회’를 설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1번씩 시민의 자유에 해를 가져오는 인물의 이름을 도자기 조각에 쓰게 하여 일정 수준 이상이 될 때 강제 추방하는 제도인 ‘도편추방제’를 실시하였습니다.

    -출처: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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