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월 중순부터 일본이 점령한 인천과 서울을 시작으로 피란민이 발생, 경복궁 점령 이후 6~8할의 서울 주민이 피란합니다.
평안도에서는 청군의 남하로 많은 평양도민이 황해도로 피란, 청일 양군은 군량 보급없이 현지 조달로 이뤄져 경기, 충청, 평양에서 쌀과 목재 등 생필품의 가격이 7~9월간 2배에서 5배로 폭등, 9월부터는 석유를 포함해 생필품의 거래가 끊겼으며 8월부터 성환에서 패배해 북상하는 청군과 원산에 상륙한 일본군의 약탈이 자행되었습니다.
특히 양군의 물자약탈과 노동 징발로 평양주민의 피해가 극심했으며 이후 평안도 경제가 파탄나고 세입이 전혀 되지 않아 극심한 재정난을 초래, 일본에 반기를 든 2차 동학농민운동은 일본 지휘하의 조선 관군들이 소탕했는데 여기서는 삼남 지방의 세입 체제가 붕괴되며 이때 벌어진 재정난은 대한제국 초창기까지 지속될 정도로 수년동안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일본은 1년 뒤인 1895년 러시아와 연대하는 명성황후를 살해한 뒤 물러났던 친일내각을 재집권시켰고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망명, 이렇게 러시아와 일본이 대립한 가운데 1897년 대한제국이 건국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