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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쌍7214
한알쌍721423.03.30

경주 문무대왕릉은 바다 속에서 무덤인가요?

경주 감포해수욕장 밑에 있는 경주 문무대왕릉 있는데

바다 속에 문무왕 무덤인가봐요. 근데 돌아가셨을 때 어떻게 안치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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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


    아버지 무열왕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제30대 문무왕.


    큰 뜻을 이뤘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나라를 걱정했다.


    문무왕은 자신을 화장하여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평안하게 지키겠노라 유언했다.


    그 뜻을 받들어 문무왕의 유해를 육지(능지탑지로 추정)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에 뿌렸다.


    양남면 봉길해변에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다.


    문무대왕릉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위에서 대왕암을 내려다보면 동서남북으로 물길을 만들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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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30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아버지 무열왕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제30대 문무왕.
    큰 뜻을 이뤘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나라를 걱정했다.
    문무왕은 자신을 화장하여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평안하게 지키겠노라 유언했다.
    그 뜻을 받들어 문무왕의 유해를 육지(능지탑지로 추정)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에 뿌렸다.
    양남면 봉길해변에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다.


    사적 제158호 문무대왕릉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위에서 대왕암을 내려다보면 동서남북으로 물길을 만들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길은 대왕암 안쪽을 항상 잔잔하게 유지해주는 장치이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여 있는데 이 아래에 문무왕이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경주문화관광 문무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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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혀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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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봉길해수욕장 맞은 편 동해 바다에 위치한 작은 바위섬이며 신라 문무왕의 왕릉으로 유명합니다.

    기록과 대조해 감은사지나 이견대 등의 용도, 구조 및 위치로 보아 대왕암이 바로 승하한 문무왕을 장사지낸 문무왕릉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논란은 문무왕의 화장한 유골을 뿌린 산골처 인가, 아니면 유골함과 부장품이 지금도 안에 들어있는 수중릉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 전자라고 해도 이미 신라 당대부터 윤회해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있는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 사실상 왕릉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하고 재위 21년 사망했고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장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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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무왕은 평소에 지의법사에게 죽으면 "짐은 죽으면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려고

    하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지의법사는 "용은 짐승인데 어찌 용이 되려 하십니까?"

    하고 말하자 문무왕은 "나는 세상의 영화를 버린지 오래니,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드는것이

    내 소원이오"하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동해 바닷가의 큰 바위 위에다

    장사지내 주오"라고 하여 문무왕이 왕이 된지 21년 만인 681년에 승하하자, 유언대로 동

    해 바닷가의 큰 바위위에 장사를 지냈답니다.

    그 뒤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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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주 문무왕릉은 5세기에 신라의 문무왕이 건립한 무덤으로, 경주 감포해수욕장 밑 바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바위로 조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문무왕과 그의 부인인 왕후선덕의 무덤이 있습니다.

    문무왕릉의 안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33년에는 일본인들이 문무왕릉을 수탈하면서 무덤 안의 유물들이 많이 훼손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국내 외국인 관광객들이 문무왕릉을 방문하면서 무덤 내부를 살펴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문무왕릉의 안치 상태는 많이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현재에는 문무왕릉이 보호되고 있으며, 수중조사를 통해 무덤 내부를 상세히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문무왕릉이 위치한 지역은 경주시의 문화재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문무왕릉의 안치 보호와 보존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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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대왕암이라고 불리었고 어떻게 안치되었는지 조사를 해보았는데, 사실상 허구이며 그냥 상징적으로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왕이어서 바다에 안장하였고, 죽은 후 바다의 용이 되었다 이렇게 후대에 이야기를 남긴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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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주 문무대왕릉은 바다 속에 있는 무덤이 아닙니다. 경주 문무대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사적 제 13호로 지정된 유적지입니다. 문무대왕은 신라 시대의 제30대 왕으로서, 5세기 중반에 살았습니다. 그의 무덤인 문무대왕릉은 특히 돌조각과 천연색 돌로 만든 토기 등이 발견되어서, 고대 신라의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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