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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09.17

문무대왕릉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경주를 지나가다가 문무대왕릉 표식을 본 적이 있는데 무덤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고 바다가 무덤이라고 하던데 다른 왕들은 다 무덤이 있는데 문무대왕릉은 왜 무덤이 없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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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7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봉길해수욕장 맞은 편 동해 바다에 위치한 작은 바위섬이며, 신라 문무왕의 왕릉으로 유명합니다.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으며, 일명 대왕암(大王岩)과 대왕바위라고도 합니다.

    기록과 대조해 감은사지나 이견대 등의 용도, 구조 및 위치로 보아 대왕암이 바로 승하한 문무왕을 장사지낸 문무왕릉임은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래에 있는 논란들은 문무왕의 화장한 유골을 뿌린 산골처인가, 아니면 유골함과 부장품이 지금도 안에 들어있는 수중릉인가에 대한 논란이었고, 전자라고 해도 이미 신라 당대부터 윤회해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있는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실상 왕릉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하고는 재위 21년(681)에 사망했습니다.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서 장사하였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무왕은 평소에 지의법사에게 죽으면 "짐은 죽으면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려고 하오"라고 말했답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동해 바닷가의 큰 바위 위에다 장사지내 주오"라고 하여 문무왕이 왕이 된지 21년 만인 681년에 승하하자, 유언대로 동해 바다의 바위에 문무왕의 시체를 화장해 뿌렸기에 왕릉이 없는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무왕의 유언 때문입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해 유골을 동해에 안장하면 용이 되어 침입해 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했고, 신문왕은 이 유언에 따라 장사지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30대 문무대왕은 29대 태종무열왕의 아들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성하였습니다. 왜구들의 침입을 걱정하여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는 유언에 따라 경주 앞바다에 대왕암을 만들었고 문무와의 아들인 31대 신문왕은 감은사를 만들고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