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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즐거운가오리18823.05.31

고려시대에 중방은 어떤 역할을 한 기구인가요?

고려시대에 중방은 무신정변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무신들이 집권한 후 어떻게 중방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었나요?

중방은 어떤 역할을 주로 하던 기구라고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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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3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이군육위(二軍六衛)의 지휘관인 상장군·대장군으로 구성된 회의기관.

    장군·낭장·산원(散員)·교위(校尉) 등 하위의 각 부대장들로 구성된 회의기관인 장군방·낭장방·산원방·교위방에 대칭되는 기관이다.

    내용

    중방의 설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이군육위의 군사제도가 완성된 현종 무렵으로 추측된다. 전체 구성원은 16인인데, 반주(班主)라고 불리는 응양군(鷹揚軍)의 상장군이 중방회의의 장을 담당했으며, 궁궐·도성의 수비와 치안 등 이군육위의 임무와 관련된 주요 안건을 다루었다.

    그러나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이고(李高)·이의방(李義方) 등이 정변을 일으켜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문신이 권력을 독차지한 고려 전기 때와는 달리 중방은 막강한 정치권력 기관이 되었다.

    즉 집권한 무신들이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고위관직을 차지한 뒤 중방에 모여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공동으로 처리해 그 기능과 권한이 확대, 강화되었던 것이다. 궁성수비와 일반치안을 위한 병력 배치, 형옥치죄권(刑獄治罪權) 행사, 도량형 도구의 검사·통일, 관직의 증감 및 관리의 임면(任免) 등이 그것이다.

    이는 정중부·경대승(慶大升)·이의민(李義旼)으로 이어지는 초기 무신정권시대에 집권무신의 정치·경제·군사적인 기반이 확고하지 못해 중방을 통한 정치가 이뤄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집정부(執政府)를 형성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데서 연유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방 [重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나라 내정간섭을 통한 무신집권기 시기에

    도평의사사가 등장하게 되며 행정최고기구가 되었답니다.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

    도병마사라는 국방회의 기구가 있었습니다.

    중대한 사항이 생기면 도병마사에서 회의를 진행했죠.

    중방은 고려 중기쯤 등장한 별볼일 없는 무신들의 기관이였는데

    이게 무신정변을 통해 최고기관으로 올라서며 도병마사 기능이 위축되었어요.

    그러다 무신집권 수장이 교체되며 원나라에게 굴복하게 되자

    원나라의 내정간섭 기구로 도병마사를 부활시키고 도평의사사 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어요.

    그렇게 되면서 다시 도평의사사가 최고기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방(重房)은 고려 시대 무반(武班)에서 가장 높은 지위였던 상장군(上將軍)과 그 바로 아래의 대장군(大將軍)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기관이다. 무신집권기 초기에는 최고의 권력 기관으로 이용되었다. 충선왕(忠宣王) 시기에 잠시 폐지되었다가 복구되었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 완전히 폐지되었다.

    -출처:우리역사넷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방은 무신정변 이후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야말로 최고기구로 자리잡게 됩니다. 아무래도 무신들이 직접적인 조정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무신정권 초기를 보면 알다시피 권력의 중추가 지속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구를 마련할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 중앙군 무신들의 합좌기구인 중방이 권력의 중추가 되었지요. 이는 무신정변의 주동자 중 한명인 정중부가 중방의 우두머리인 응양군 상장군 위치에 있었던 것 역시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였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