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동아시아의 호칭 개념 중 하나인 묘호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묘호는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임금이 죽은 이후에 그 공덕을 기리며 붙이는 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이런 묘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주로 어느나라에서 사용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묘호는 황제나 왕이 죽은 뒤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붙이는 호를 가리키며, 시호(諡號)는 황제나 왕 또는 사대부들이 죽은 뒤 그의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하는 호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죽은 황제의 영(靈)을 태묘(太廟;조상의 영을 제사지내는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되는 칭호로 추증되었다. 한대(漢代)에는 묘호를 가진 황제가 적었으나, 그뒤 점차 일반화하여 당대(唐代) 이후의 황제는 대개 묘호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 때는 무열왕만이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가졌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조(祖)·종(宗)의 묘호를 추증하였다. 이밖에 베트남에서도 사용하였다.
묘호를 정하는 방식은 대체로 나라를 세운 공이 있거나 반정(反正)이나 국난(國難) 극복을 통하여 중단되었던 나라의 정통(正統)을 다시 세운 왕에게는 조(祖)의 묘호를,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한 왕 또는 덕(德)이 출중한 왕에게는 종(宗)의 묘호를 추증하였다.
예를 들면, 조선을 창건한 이성계의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諡號)는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다. 인조(仁祖)와 마찬가지로 반정을 통하여 왕위에 오른 중종(中宗)의 경우는 원래 중조(中祖)의 묘호를 추증하려 하였으나 성종(成宗)의 직계(直系)로서 정통을 이었다 하여 중종이라 하였다. 또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宣祖)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처음에는 묘호를 선종(宣宗)이라 하였다가 선조로 바꾸었는데, 이는 '조(祖)'의 묘호가 '종(宗)'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출처 : 두산백과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묘호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인 상나라에서 유래한 왕실 예법입니다. 왕이 승하하면 따로 사당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고, 몇 대가 지난 후 왕과 신하들이 논의하여 새로운 칭호를 올려 바쳤습니다. 이 칭호가 바로 묘호입니다. 즉, 후대가 이전 왕들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어 받들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중국, 베트남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