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공민왕은 반원정책을 펼치고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려한 군주입니다.
이 당시 신돈이라는 중을 크게 등용하여 여러 개혁등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와중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고나서 실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신돈은 반야라는 여인을 소개하였고 공민왕은 반야가 노국공주와 매우 닮아 총애하였고 이들 사이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는데 후에 우왕이 됩니다.
조선의 신진사대부들은 이 우왕이 공민왕의 자식이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라 하면서 정통성을 부정하였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내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