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생활꿀팁 이미지
생활꿀팁생활
생활꿀팁 이미지
생활꿀팁생활
썬더스톰
썬더스톰23.03.01

'축구'라는 스포츠의 정확한 최초 유래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전에 다른 질문에도 글 남겼지만 저는 축구라는 행위이자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고 즐기는 평범한 중년남성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창 공을 차다가 뇌리에 궁금함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군요.

"이렇게 재미난 운동이 과연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처음 한 것일까?"

그래서 글 써보는데, 축구를 어떻게 탄생되었나요?

(저는 이 글 마치고 곧 또 밖에 나가 사람들이랑 공놀이하러 나갈 생각입니다. ㅋㅋ)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투명한숲제비211입니다.

    축구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게임 "쑤웨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게임은 공을 땅에 떨어뜨린 상대팀의 골대에 넣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후 이 게임은 서구에 전파되면서 여러 가지 변형을 거쳐 현재의 축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축구"는 모든 종류의 공을 이용한 게임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며, 이후 축구는 여러 국가에서 발전해 현재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현대의 축구는 정확히 어디에서 바로 시작됐다라고 보기엔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스타박스입니다.

    축구와 비슷한 놀이 문화는 세계 여러 곳에서 고대부터 발달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아즈텍과 마야 같은 고립된 문명에서도 이러한 놀이 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발로 무언가를 차면서 논다는 것은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4~16세기에 피렌체에서 하던 공놀이가 현대 축구의 모태라고 주장하며 칼초라고 불렀는데 발상지인 피렌체에서 칼초 대회까지 있습니다만 이걸 진짜 축구의 모태로 볼 지는 의문인 것이 공 하나 던져주고 장정 수십명이 패싸움을 벌이는 희한한 경기 양상은 현대 축구의 모습과 상당히 동떨어진 모습이긴 합니다.


    고대 로마 제국 시절에도 공을 발로 차는 스포츠가 있었다. 일종의 군사 훈련이었다는 듯. 하르파스툼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전통 놀이인 추쥐가 기원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어느 나라가 축구의 기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어느 나라가 현대 축구의 형태를 완성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영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63년 런던의 풋볼 클럽과 학교 풋볼부들의 관계자가 모여 회의를 가졌고, 회의 결과 축구협회, 약칭 FA가 탄생하였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축구협회였고, 그 뒤에도 잉글랜드는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아닌 그냥 '축구협회'라는 명칭을 계속 쓰며 자신들이 현대 축구의 발상지임을 계속해서 어필하고 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는 축구가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끔 축구의 규칙을 제정하고, 체계적으로 행정 체계를 발전시켰으며 세계 각국에 축구를 현대적인 스포츠로 널리 보급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구의 유래를 더듬어 보면 축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정설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문헌에 의하면 서양문명의 발생지라는 고대 로마에서 하파스톤이라는 경기를 즐겨했다. 머리털을 가득 채운 가죽 볼을 던지고 차고 하는 간단한 형식이 곧 축구의 시초인 것이다. 동양에서는 고대중국의 황제시대에 궁중 안에서 하든 축국이라고 발로 차는 운동이 행하여졌다.


    그렇지만 축구의 발상내지 성장의 본령은 아무래도 영국에서 시작한 풋볼이다. 11세기(1042년) 덴마크인에 의해 정복당했던 영국이 덴마크의 압제를 벗어나자 덴마크인들에 복수하는 뜻에서 그들 병사들의 신체가 전쟁터에 딩굴고 있을 때 영국 사람들이 분노에 차 그들의 두골을 차기 시작한데서부터 차는 것을 즐겨했는데 이것이 축구의 유래라고 하기도 한다.


    그 뒤 두골 대신 소의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 넣어 차는 것으로 변천했다. 12세기에 와서 이와 같은 묘한 운동은 전국에 성행되어 200-300명이 떼를 지어 도시나 촌촌에서 이 경기를 해오다 차츰 개량 발전하여 20명 전후의 사람이 편을 짜서 대항전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영국이 국책으로 실시하던 활쏘기가 이 새로운 경기에 눌려가자 헨리2세는 법으로 중지시켰다. 이로써 400년간 축구의 기원이라 할 경기는 종적을 감추었다. 그 후 1633년 제임스 1세는 축구가 단결력과 조직력으로 외적에 대한 국방에 큰 힘이 된다고 판단하여 축구 경기 금지령을 해제시켜 점차적으로 당시 7대양에 고루 펼쳐진 영국 영토에 대대적으로 할애 보급헸다. 이로써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유늬온 잭’이 휘날리는 곳에 축구는 반드시 존재했고 이로 인해 축구는 온 세계에 널리 보급된 것이다.


    당시 상류계급에서 즐기는 오락단계에 있든 풋볼은 영국의 세력확장과 더불어 유럽의 각국에 급속히 확장되어 갔다. 오늘날처럼 여행시 서류수속이 복잡하거나 제한이 없고 누구나 간단한 서류와 영국의 파운드와 금만 지참하여 유럽 여러나라와 러시아까지 여행할 수 있어서 영국의 왕족들과 유럽의 왕족들은 서로 가족적인 유대를 가질 수가 있었으므로 영국의 상류계급은 대부분 유럽에 친척이나 연고자를 갖일 수 있었다.


    영국Public school이나 대학에 가지 못한 상류계급 자제들은 스위스나 독일의 명문 대학에 유학을 갔다. 이리하여 그들은 여행지 또는 유학간 곳으로 취미인 축구를 가지고 갔다. 축구는 이리하여 F.A의 새로운 룰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1865년에는 독일의 명문대학에서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1975년 독일의 명문대학인 칼스루에와 옥스퍼드대학이 친선 경기를 칼스루에에서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경기가 축구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해외원정이란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프랑스에는 1872년에 창설된 루어블F.C가 아마도 최초의 축구클럽이 되었다. 1901년 당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의 속력이든 폴란드의 프라하에 축구협회가 결성되었다. 1906년에는 최초의 크라크프에 최초의 축구 클럽이 생겼다. 유럽에서와 같이 영국의 축구는 남미의 대도시에 확대일로를 걷고 있었다. 1867년에는 이미 부에노스 아이레스 클럽에서 축구가 실천되고 있었다. 정말 축구다운 축구가 실시되기는 1884년이며 알렉산더, 와트슨, 해튼이라는 스코틀랜드 교사가 온 후의 일이다. 1893년 해튼은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를 창설했다.


    1891년 우루과이에도 철도회사에 소속된 최초의 클럽이 탄생했다. 오늘날 세계축구의 강국으로 손꼽히고 있는 브라질사람들이 처음축구의 재미를 알게 된 것은 영국인이 건설한 철도망이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고 축구를 브라질에 소개한 이후부터이다.


    한편으로는 클리미아 전쟁에서 돌아온 영국인 선원들의 공개 경기라고 생각된다.


    이 선원들은 1878년 이사벨 섭정 왕녀를 위해서 Reio의 궁전앞에서 공개경기를 거행한 것이다. 1895년 4월 15일 최초의 공식경기가 브라질에 거행되었다. 그러나 1세기가 지난 오늘의 브라질은 이제는 세계의 최강국이 되었으며 국민들은 축구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축구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축구가 보급초기에는 영국에서도 상류계급에서 즐겨 행하든 것이 차츰 노동자 계급으로 번져 대영제국과 유럽 그리고 남미에서도 학교와 노동자계급에서 날로 번창하여 오늘날 우리가 즐겨 행하는 축구로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