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이에 대해 사죄의 제스처를 보내고, 조선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함에 따라 조선이 일본의 요청으로 통신사를 파견해서 선진 문물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이는 후대 일본 메이지 유신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입니다. )
임진왜란 이후 기유약조를 체결하고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 파견하였습니다. 에도막부에 통신사를 파견한 이유는 전쟁 포로 송환을 위한 실질적 필요에서 의해 파견되었습니다. 또한 전쟁 재발 방지와 일본 정세 파악을 위해서도 파견한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막부의 쇼군의 요청에 파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