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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닉넴
아하닉넴23.05.08

우리나라에서 엿은 언제부터 만들어 먹었나요?

엿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엿은 우리나라의 전통 먹거리인지 여부와 언제부터 어떻게해서 만들어 먹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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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 고려시대 때,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성종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으로 50권을 완성했고, 중종25년(1530년) 이행, 윤은보 등이 내용을 보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만들었다. 이 외에도 허균의 성서부부고 중 제 26권인 도문대작(屠門大嚼)에도 흰엿과 검은엿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엿은 옛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그나마 사먹기 쉬웠던 군것질 거리였고, 평민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엇던 다른 한과들과 달리 평민들도 접할수 있었던 한과였으며, 길거리 음식이라 한과들중 사실상 유일하게 대중화된 한과였다. 영조대에도 엿장수와 떡장수, 술장수들이 과거시험장으로까지 가서 음식을 팔아제끼는 등 과거시험장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고 힐난하는 기록이 있다. 정조 시대 김홍도의 씨름도에도 씨름판 관중들에게 엿을 파는 엿장수가 묘사되어 있다.

    1909년의 엿장수에 관한 기록을 보면 2관(貫·한 상자분)의 흰 엿과 검은 엿(대추엿)을 하루 종일 걸어다니면서 팔았다고 한다. 이걸 전부 팔면 1원(100전)의 순이익이 남았다는데 당시의 물가 상황을 보자면 한 끼 식사가 5전 정도였으니 독거하는 사람이면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는 돈벌이일 수도 있으나 가족을 부양하고 어쩌고 하면 생각보다 잘 벌리는 장사는 아니었다.

    6.25 전쟁 이후에는 엿장수가 돈 대신 고물을 받아 되파는 고물상을 겸하기도 했다. 검정 고무신에서도 이런 게 잘 표현되어있다. 이때 생겨난 말이 바로 '○○는 엿바꿔 먹었냐?'가 되시겠다. 또 고물을 갖다주면 쇠가위로 기다란 엿을 잘라 고물에 알맞는 값어치만큼 주었는데, 말이 알맞게지 사실상 주는 사람 마음이어서 똑같은 고물을 가져다줘도 그때 그때 받는 엿의 양이 달랐기에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도 생겨났다.

    현재는 지역축제나 전통시장에서 간간히 볼 수 있으며, 주로 각설이 컨셉으로 공연을 하면서 엿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리어카에 배터리를 장착하고 음향 시스템을 장착하여 트롯트 음악을 틀고 장사를 하는데, 신나는 분위기가 특징이다.

    출처: 나무위키 엿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헌 상에서 가장 오래된 엿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여지승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