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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9

은혜를 뼛속 깊이 기억한다는 뜻의 각골난망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입은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뼈에까지 사무쳐 잊혀지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각골난망의 유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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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각골난망( 刻: 새길 각, 骨: 뼈 골, 難: 어려울 난, 忘: 잊을 망)은 남에게서 입은 은혜가 골수에 사무쳐 잊혀지지 않는다는 뜻이라고합니다.

    각골난망의 유래는 중국 전국시대 한나라의 어느 벼슬아치가 나라의 공금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어느날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를 변상하지 못하면 목숨으로 갚아야할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이죠.

    헌데 평소에는 엄하게만 대하던 한 대감이 이를 대신 갚아 주어 목숨을 구하게 되었답니다.

    이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嚴敎厚恩 刻骨難忘(엄교후은 각골난망)이라 표현한데서 각골난망 고사성어는 유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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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나무
    대나무23.04.09

    춘추시대 진나라(晉)의 위무자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위무자에게는 사랑하는 애첩이 있었습니다.

    애첩을 무척 사랑해서 전쟁에 나갈 때마다 자신의 아들인 위과에게 자기가 전쟁에서 죽으면

    애첩을 재가시키라고 말합니다.

    어느 날 위무자가 병들어 죽게 되자 아들을 불러서 자기가 죽으면 애첩을

    자기와 함께 순장시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유언대로 하자니 애첩을 산 채로 순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들 위과는 돌아가시기 전 정신이 혼미하셔서 그러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애첩을 좋은 가문에 시집을 보냈습니다.

    훗날 전쟁터에서 위과가 진나라(秦) 환공의 장수 두회와 싸우게 되었는데,

    두회의 말이 풀에 걸려 넘어져서 그를 사로잡아 군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날 밤 위과의 꿈에 서모의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나와 은혜를 갚기 위해

    풀을 엮어서 말을 넘어지게 했다고 말했다 한다는 것이 각골난망의 유래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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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자성어 '각골난망(覺骨難忘)'은 어려운 시련이나 고통을 겪은 경험을 한 후,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는 중국의 많은 사자성어와 마찬가지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래에 따르면, 한 나라의 왕이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대신 즐기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나라가 적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 그 왕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부상으로 인해 군사 업무를 담당할 수 없게 되어 나라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그의 후손들에게 전해지면서, 그들은 이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각골에 새겨놓고 잊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각골난망'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래로 인해, '각골난망'은 어려운 시련이나 고통을 겪은 경험을 한 후에도 그것을 잊지 않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다짐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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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나라의 대부 위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첩이 한명 있었다. 어느날 위무가 병으로 몸져 눕게되었다. 아직 제정신일 때 그는 아들 위과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 ' 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었는데 '내가 죽으면 저 여인은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을 했다.

    위과는 '차라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을 좇아서 이를 개가를 시키리라 ' 생각했다.

    그리하여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를 면하게 했다.

    후에 진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위과가 전쟁에 나갔다.

    진나라의 두회와 싸우다가 사로잡아 뜻밖에도 큰 전공을 세울수가있었다.

    그날밤, 위과의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을 하는데 그는 서모의 아버지의 망혼이었다. '나는 그대가 출가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그대는 아버님이 제정신일때의 유언을 따라 내 딸을 출가시켜주었소. 그때 이후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할 길을 찾았는데 이제야 그 은혜를 갚은 것이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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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진나라(晉--)의 대부(大夫) 위무(魏武)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첩(妾)이 한 명 있었다. 어느날 위무(魏武)가 병(病)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 제정신(-精神)일 때 그는 아들 위과(魏顆)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죽으면 이 첩(妾)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改嫁)를 시켜라.」 하더니, 그 뒤 병(病)이 심(甚)하여 죽게 되었는데, 「내가 죽으면 저 여인(女人)은 순장(殉葬)을 시켜라.」고 유언(遺言)을 했다. 이과(魏顆)는 「차라리 정신(精神)이 있을 때의 명령(命令)을 좇아서 이를 개가(改嫁)를 시키리라.」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서모(庶母)를 개가(改嫁)시켜 순사(殉死)를 면(免)하게 했다. 후(後)에 진나라(晉--)와 진나라(秦--) 사이에 전쟁(戰爭)이 일어나서 위과(魏顆)가 전쟁(戰爭)에 나갔다. 진나라(秦--)의 두회(杜回)와 싸우다가 위험(危險)한 지경(地境)에 이르렀을 때에 두회(杜回)가 풀에 걸려 넘어져 위과(魏顆)가 두회(杜回)를 사로잡아 뜻밖에도 큰 전공(戰功)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날 밤, 위과(魏顆)의 꿈 속에 한 노인(老人)이 나타나서 말을 하는데, 그는 서모(庶母)의 아버지의 망혼(亡魂)이었다. 「나는 그대가 출가(出家)시켜 준 여인(女人)의 아비요. 그대는 아버님이 제정신(-精神)일 때의 유언(遺言)에 따라 내 딸을 출가(出家)시켜 주었소. 그때 이후(以後)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報答)할 길을 찾았는데 이제야 그 은혜(恩惠)를 갚은 것이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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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춘추시대 진나라(晉)의 위무자는 자신의 아들인 위과에게 자기가 사랑하던 후처, 즉 아들의 서모를 자신이 죽으면 재가(재혼)시키라고 말하는데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갑자기 정신이 오락가락해져서 자기와 같이 묻으라고 말을 바꾸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위과는 "돌아가시기 전 정신이 혼미하셔서 그런 거라고 이라는 이유를 들어 서모를 순장하지 않고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도록 했다고 합니다.훗날 전쟁터에서 위과가 진나라 (秦) 환공의 장수 두회와 싸우게 되었는데, 두회의 말이 풀에 걸려 넘어져서 그를 사로잡아 군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날 밤 위과의 꿈에 서모의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나와 은혜를 갚기 위해 풀을 엮어서 말을 넘어지게 했다고 말했다 합니다. 이러한 고사에서 이렇게 남이 베푼 은덕(恩德)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속 깊숙이 사무치어 잊을 수 없다는 뜻으로 각골난망이라고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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