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에서 천문을 어떻게 관찰한다는 것인가요?
선덕여왕이 만들었다는 첨성대는 천문을 관측하는 곳이라던데 첨성대는 둥그런 탑모양의 건물만 덩그러니 하나 있을 뿐인데 어떻게 천문을 관측하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질문자님의 질문처럼 의문을 품고 있는 부류도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설들 역시 추측에 불과할 뿐 문헌적・고고학적 증거가 없어 확신이 불가능하며, 주류 학계에서는 정사에 기록된 통설과 신라 천문 기록의 정황 연구 등을 토대로 첨성대가 천문대였음을 정론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첨성대(瞻星臺)는 그 이름대로 '별[星]을 보는[瞻]'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져 내려왔고 조선 후기까지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으나, 광복 이후 새로운 견해가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우선 삼국사기에는 첨성대의 기록이 등장하지 않으며, 삼국유사에는 명칭과 용도, 사람이 오르내렸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로 그렇다고 하기엔 내부가 매우 좁고 불편합니다. 게다가 천문 관측을 하는 시설인데 정작 다른 천문대처럼 산 위나 높은 곳이 아니라 왕궁 옆의 평지에 건설되었다는 점도 의문으로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첨성대의 역할이 천문대가 아니라 일종의 기념비 혹은 제단, 창고였을 것이라는 설이 등장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종교적 상징물(이용범 교수)', '과학 수준을 과시하는 상징물(김용운 교수)', '선덕여왕을 신성화하기 위한 도구(정연식 교수)' 등으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으며, 또는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이 자리에 과거 천문대가 있기는 했지만 목조 건물이었으므로 지금은 사라졌고 폐사지의 석탑, 포석정지의 석구처럼 천문대의 '부속 건물'만 남은 것이 지금의 첨성대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첨성대는 천문관측을 위한 원시적 형태의 카메라였는데 즉 첨성대의 형태 그 자체가 하나의 카메라 역할을 했다는 이론 입니다. 어릴때 컴컴한 방에 촛불을 켜놓고 두꺼운 종이박스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종이박스의 안을 보면 촛불 모양이 구멍을 통해 박스 벽에 거꾸로 비춰져 보이는 실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 입니다. 그게 바로 카메라의 원리인데 유럽에서는 이걸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렀고 실제로 이걸 이용해서 초상화 같은 걸 그리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첨성대 카메라 이론은 첨성대 꼭대기의 우물같은 구멍을 나무판자 등을 이용해서 막고 판자를 걸치기 위한 홈을 만들고 그 나무판자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첨성대의 채워지지 않았던 바닥에 비치는 별의 모양을 이룬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첨성대의 천문 관측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추측이 가능합니다. 먼저 '첨성"이라는 단어에서 별을 관측한 것으로 봅니다. 조선시대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첨성대에 대해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정복이 서술한 <동사강목>을 통해 "사람들이 가운데를 통하여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첨성대의 입구(중간에 창문)로 들어가 사다리르 타고 정상에 오른 뒤 별을 관측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은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찰하지만 당시엔 육안, 즉 눈으로 보고 별자리를 관찰하였습니다. 실제로 첨성대 안의 외벽을 보면 당시 별자리를 보고 모양을 그린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를 통해 낮에는 들어오는 햇빛의 위치를 파악하여 계절을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계절에 따른 천체의 변화를 그려가며 연구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 답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추가로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달아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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