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측근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 공사가 동의하여 고종과 왕세자가 비밀리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입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신변에 불안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거처를 옮긴 사건으로 1년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또한 고종은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민영환을 특사로 파견하여 러시아 군대와 교관의 추가 파병 3백만엔 차관 전신선 설치 등을 요청하도록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약간의 군사고문단만 민영환 귀국길에 동행토록 하였습니다. 고종은 이들을 중심으로 800명을 호위병으로 훈련시켜 환궁에 대비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압록강 주변과 울릉도 삼림채굴권 경원 종성의 광산채굴권 강원전신선을 시베리아철도와 연결 등 경제적 이권을 가져갔습니다. 이런 러시아의 이권에 대한 국내의 불만은 고조되었고 독립협회 등에서는 환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게 되자 고종은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1년만에 환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