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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산제일봉
봉래산제일봉22.08.25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강화도 천도는 도피인가요 아님 전쟁을 위한 전략이었나요?

고려시대에 약 100년동안 무신정권이 나라를 통치하잖아요. 이시기에 몽골과 전쟁을 하는데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강화도 천도는 도피인가요 아님 전쟁을 위한 전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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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스마트한고슴도치132입니다.

    강화천도 후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어 기르는 돼지, 소 등의 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정도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있었는데 집권세력의 수장인 최우는 여전히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고 해요.

    정말 항전의지를 가지고 천도를 했다면 항전에 힘을 쏟아야지 본인의 호위호식을 위해 낭비를 했을까요?

    명분 자체는 항전이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단지 권력층이 계속 집권하기 위한 천도로 생각합니다.


  • 안녕하세요. 검소한돼지249입니다.

    둘 다가 아닐까요? 일단은 전쟁이 일어났으니 싸워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길 수 없음을 알고 강화도로 도피(천도)를 하며 힘을 기른다고 구실을 삼았겠지요. 여기에 몰골은 바다가 없는 내륙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물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져 바다 건너까지 쳐들어 오지 못할 것이라는 전략적인 것도 함께 포함하겠지요.


  • 안녕하세요. 진득한앵무새298입니다.

    몽골은 고려를 자주 침공했기 때문에 강화도를 이전한 것은 침략을 어렵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저는 그것이 전쟁을 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하고 싶네요.

    1271년 공민왕은 즉위하여 노국공주 한 명을 제외하고는 왕비로 파견되었던 몽고공주들을 모두 추방함으로써 고려를 개혁하려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훌레구 칸의 아들 아바카 칸과의 결혼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아바카 칸은 8만 명을 거느리고 1274년 개경을 침공했으나 악천후와 이성계 장군(후의 태종)이 축성한 견고한 방어 요새로 실패하고 다시 북쪽으로 후퇴했습니다. 이듬해인 1275년에 그는 20만 명이라는 훨씬 더 큰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지만 대부분 같은 이유로 다시 실패했습니다. 몇 주 후 마침내 그들이 적의 영토 깊숙한 곳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시도하는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멀리 떨어진 보급품 및 식량 부족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음 철수 전체 북부 영토를 완전히 포기 더 일찍 정복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체 프로세스를 시작하여 총체적인 혼란을 겪고 경력을 끝냈습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