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라울곤잘
라울곤잘23.02.09

조선시대 경신환국은 어떠한 사건 이였나요?

역사관련 공부를 하다가, 경신환국을 알게 되었는데요.

조선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알고 있는데, 어떠한 사건이였는지 자세하게 답변 부탁 드립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680년(숙종 6) 3월 시작된 경신환국(庚申換局)은 당시 집권당이었던

    남인(南人)이 서인(西人)에게 축출당한 정치적 사건을 말하며,

    경신대출척이라고도 한다. 환국이란

    갑작스럽게 정국이 바뀐다는 뜻으로,

    역사적 용어로는 숙종 대에 일어난

    경신환국, 기사환국(己巳換局),

    갑술환국(甲戌換局)을 지칭한다.


    -출처: 우리역사넷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신환국은 1680년(숙종 6) 남인(南人) 일파가 정치적으로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사건을 말합니다.

    정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encykorea.aks.ac.kr/Article/E0002637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신환국은 숙종 6년이던 1680년에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한 일을 말합니다. 숙종 대 최초로 일어난 환국으로, 서인의 입장에서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 남인의 입장에서는 '경신사화(庚申士禍)' 라고도 합니다.

    나름대로 이론 싸움으로 예의를 갖추며 싸우던 예송논쟁과 달리 한 편이 완전히 갈려나가는 대대적인 숙청은 관료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왔고, 이에 상호공존의 붕당 정치는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서인의 분파도 가져왔는데, 남인 처벌에 있어 강경한 입장인 송시열의 노론과 비교적 온건한 입장인 윤증의 소론이 그것입니다. 이는 곧이어 1681년 회니시비이라는 사문의 시비문제로 표면화 되었습니다.

    숙종은 자신의 친위 세력을 한 곳으로 결집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외척, 더 정확하게는 더 만만한 처가입니다. 숙종 시기에 여인천하가 열리는 것은 이 때문으로, 숙종은 보다 부담없이 갈아치울 수 있는 상대인 처가에 권력을 몰아주고, 그 처가와 손잡은 당파가 권력을 쥐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인의 딸이라는 평이 도는 장희빈이 중전에 오른다거나, 숙종의 첫 정비 인경왕후가 죽은 다음에 국상 중인 상황에서 명성왕후가 반억지로 민유중의 딸(인현왕후)을 새 왕비로 택해 국혼을 진행시켜 버린다거나 하는 괴랄한 사건들이 이어지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신환국은 1680년 남인이 대거 실각하여 정권에서 물러난 사건을 말합니다.

    경신대출척이라고도 하며 이 사건으로 서인이 득세했습니다.

    1647년 예송에서의 승리로 정권을 장악한 남인은 현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숙종으로부터는 신임을 얻지 못했는데 남인끼리 청남, 탁남으로 갈라져싸우고, 한편으로 권력을 장악한 남인 세력에 대한 염증 때문입니다.

    경신년인 1680년 3월 당시 남인의 영수이며 영의적인 허적의 집에 그의 조부 허참을 위한 연시연이 있었는데 이때 이번 연회에 병판김석주, 숙종의 장인 광성부원군 김만기를 독주로 죽일것이요, 허적의 서자 허견은 무사를 매목시킨다는 유언비어가 퍼졌고 김석주는 핑계를 대고 불참하고 김만기만 참석합니다. 그날 비가 오자 숙종은 궁중에서 쓰는 용봉차일을 보내려 하였으나 벌써 허적이 가져간 뒤였고 숙종은 노하여 허적의 집을 염탐하게 하였는데 남인은 다 모였으나 서인은 김만기, 신여철 등 몇사람뿐이었습니다.

    이에 노한 숙종은 철원에 귀양갔던 김수항을 불러 영의정을 삼고, 조정의 요직을 모두 서인으로 바꾸는 한편 이조판서 이원정의 관작을 삭탈하여 문밖으로 내쫓으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인 4월 정원로는 허견의 역모를 고변하였는데 이른바 삼복의 변으로 인조의 손자이며 숙종의 5촌인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 3형제가 허견과 결탁하여 역모하였다는 것으로 그 내용은 허견이 복선군을 보고 주상께서 몸이 약하고 형제도 아들도 없는데 만일 불행한 일이 생기는 날에는 대감이 왕위를 이을 후계자가 될 것이오. 이때 만일 서인들이 임성군을 추재한다면 대감을 위해서 병력으로 뒷받침하겠소. 하였으나 복선군은 아무 말도 없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잡혀와 고문 끝에 처형되었고 복창군, 복선군 등은 귀양갔다가 다시 잡혀와 참형을 받아 죽었습니다.

    허견의 아버지 허적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여 죽음을 면하였으나, 뒤에 악자가 엄호하였다 하여 죽임을 당아며 이로써 남인은 완전히 몰락하고 서인들이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신환국은 1680년(숙종 6년) 남인이 정치적으로 실각하고 서인이 권력을 잡은 사건을 말합니다.1674년 남인은 2차 갑인예송 문제로 서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으나 경신환국으로 다시 실각하였습니다. 1680년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의 집에 조부의 시호를 맞이하는 잔치가 있는데, 그날 비가 왔습니다. 숙종이 잔치에 쓰게 하려고 유악(기름 먹인 천막으로, 임금만 사용하던 것)을 허적의 집에 보내려 하였으나 이미 가져가서 사용한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남인이 장악하고 있던 군권을 서인에게 넘기는 인사 조치를 단행하였죠 이로써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이후 서인은 남인을 철저히 탄압하여 붕당의 기본 원리(상호 견제와 비판)를 무너트리고 일당 전제화 정치를 실시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경신환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 › wiki › 경신환국

    경신환국(庚申換局)은 1680년(숙종 6년) 3월부터 4월 사이 조선 조정에서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당한 일이다. 당시 재상 허적이 조부 허잠의 시호를 받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