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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마우지 257
착한 가마우지 25723.11.04

고구려는 왜 6대왕을 태조왕이라 하였나요?

왕조를 개창한 왕의 묘호로 태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고구려는 6대왕에 태조왕이라고 했나요? 그리고 유일하게 '태조'라 하지 않고 '태조왕'이라 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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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대 태조 대왕의 업적이 거의 1대 국왕 이상의 업적을 남기어서 입니다. 태조대왕은 즉위하자 '모후 해씨'가 수렴청정했고, 그 이후 활발하게 국정을 펼쳤다고 합니다. 고조선과 부여를 참조해 국가제도를 확립하고 ‘신가, 팔치, 발치’ 재상 3인을 두었다고 합니다. 고조선의 천지화랑을 본받아 신수두 제전의 우승자들로 ‘선배(조의선인)’를 육성해 천하무적의 군사를 만들었고 태조대왕 즉위 당시 ‘한’의 부강함이 절정에 달하여 ‘반초’가 서아시아 전체를 정복하고, ‘두헌’이 외몽고의 북흉노를 흑해까지 밀어냈는데 아시아 전체의 패자를 자처하는 한나라로서는 고구려에게 세폐를 바치는 굴욕적인 휴전조약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휴전조약을 폐기 선언하고 요동태수를 새로 임명해 요하 동쪽 6개현을 공격하는 등 전쟁을 준비했고 다시 승부를 가려 고구려의 항복을 받겠다는 것이어서, 고구려와 한나라는 기원 105년부터 121년까지 17년간 국력을 기울여 총력전을 펼쳤다고 합니다. 태조는 ‘요동 전쟁’ 개전 당시 37세인 왕자 ‘수성’을 사령관으로 세우고 ‘선배’를 중심으로 한 정예병으로 요동의 신창, 후성 등 6개현을 격파한 후, 예, 선비를 끌어들여 해마다 한의 우북평, 어양, 상곡 등지를 침략하자 17년간 한나라의 인력, 가축과 재력 소모가 매우 컸다고 합니다. 이러한 공적을 높이사 6대 왕을 태조 대왕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