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광산은 1601년 금맥이 발견되어 에도 막부 시대 최대의 금광이었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시대 근대적 채굴 시설을 갖추어 근대화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시기 한국인 1500명을 강제 동원하여 철과 아연 등을 채굴하여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조건에서 일을 하게 해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은 강제 징용의 숨기고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하려다 한국의 반발로 수정 약속을 하고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도 광산은 일본인에게 일본 최대의 금광,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는 광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