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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7.12

고대 신라 시대에도 과거 제도와 같은 인재 선발 제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인제 등용을 위한 과거제도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삼국시대 신라에도 인재 등록을 위한 과거 시험 같은 제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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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제도 이전 고대 한국에서 인재를 뽑을 때 귀족 등 신분을 대대로 세습하거나 잘 아는 사람을 추천하고 추천자가 일종의 보증을 서는 천거 방식을 이용했고 신라의 화랑제도 역시 보통 청소년 수련단체정도로 알려져있지만 한편으로는 화랑의 매력으로 인재를 모으고 화랑과 휘하에 모인 낭도의 공동생활로 결속력을 다지고 교육해 그 중 능력이 우수한 자를 천거해 뽑아 신라의 문무관직에 부임시키는 역할이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교 지식에 대한 시험을 치러 관리를 등용한 제도는 신라의 독서삼품과 입니다.

    이 때 시험은 전적으로 시험결과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 등용에 성적을 단지 참고하는 형식으로 본격적으로 과거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라에서 골품제의 벽에 막힌 6두품 이하는 독서삼품과를 통해도 출세하는데 한계가 있어 당나라의 외국인 전형 시험인 빈공과에 응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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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사회에서 인재 등용의 기준은 출신 성분(골품), 귀족의 추천 또는 무술 실력이 좌우했다고 합니다. 원성왕은 귀족 중심의 국정 운용을 개혁하고자 필기시험에 따라 지원자를 상, 중, 하의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인재를 등용하는 혁신적인 관리선발제도를 시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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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는 통일신라 원성왕 때부터 국학에서 시행한 공무원 시험이다. 다만 이건 선발 시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격 시험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졸업자가 대나마, 혹은 나마 관등을 얻는 걸로 되어 있는데 4두품은 절대 나마 관등을 얻을 수 없었기에, 5두품 이상 자제만 입학할 수 있었던 걸로 보인다. 5경, 3사, 제자백가에 모두 능통한 자는 3등급으로 나누어 등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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