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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한할미새139
기특한할미새13923.12.26

날짜와 요일을 보고 일정을 기록해 두기도 하는 달력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날짜와 요일을 보고 일정을 기록해 둘 때 달력을 이용합니다. 요즘에는 폰 달력을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 까지는 일반 종이 달력이 더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날짜와 요일을 쉽게 알 수 있고 일정도 기록해 둘 수 있는 편리한 달력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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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2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장 오래된 달력이라고 추정되는 것은 동물 뼈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달력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프랑스의 도르도뉴 계곡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무려 3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달력은 독수리 날개뼈의 한 조각으로, 작은 눈금들이 새겨져 있다고합니다. 두 달 동안 달의 운행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뼈 조각은 달의 모습의 변화가 69개의 점으로 새겨져 있고 학자들은 이것을 두 달 동안의 달의 운행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로마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던 율리우스력이라고 불리는 달력을 1,000년 이상 사용해 왔으며 16세기 중엽에는 서기 325년에 정한 날짜보다 10일의 오차가 생기게 되어 정정하기 위해서 로마 법왕 그레고리우스 13세는 그레고리우스력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달력을 1582년에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리우스력은 4년마다 윤년을 두는 것은 전과 다름이 없으나 400년에 3일씩 달력의 날짜를 줄이기로 한것으로 1만년에 3일밖에 틀리지 않게 됨으로써 실용상 큰 지장을 주지 않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기준이 되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달력(calendar)’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흥미 있는 기록’ 또는 ‘회계 장부’라는 뜻의 ‘칼렌다리움(calendarium)’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제관이 초승달을 보고 피리를 불어 월초임을 선포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매월 초하루의 날짜를 ‘calend’라고 하였다. 조명이 좋지 못했던 당시의 밤길에는 초승달이 뜨는 것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었기 때문에 초승을 중요한 기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연(年)ㆍ월(月)ㆍ일(日)은 각각 독립된 3개의 주기인데, 이것들을 결합시키는 방법이 쉬운 일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방안으로 각 주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책(역서)을 만들게 되었다. 역서에는 천문력ㆍ항해력ㆍ농사력 등의 전문력과 우리들이 평소에 쓰는 상용력 등이 있는데 이 중 상용력에는 연ㆍ월ㆍ일ㆍ주뿐만 아니라 춘분ㆍ추분ㆍ하지ㆍ동지 및 각종 축제일 등이 기재되어 있고 주로 일상생활이나 종교 의식을 치를 때 사용되었다.

    역법은 기본 주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본 주기를 달의 삭망에 두었을 때의 역을 태음력이라 하고, 태양의 운행에 두었을 때는 태양력이라고 한다. 또 달과 태양 두 천체의 운행을 함께 고려한 것을 태음태양력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태음력이 가장 일찍 알려졌으며, 이어 태음태양력ㆍ태양력의 순으로 쓰인 듯하다. 당시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때는 달의 삭망 주기가 사계의 순환 주기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태음력이 먼저 만들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구의 자전 주기는 1태양일의 기준이 되고, 지구의 공전 주기는 1태양년의 기준이 되며, 달의 공전 주기는 1태음월의 기준이 된다. 가장 널리 이용되어 온 태양력은 고대 이집트력, 고대 로마력, 율리우스력(Julian Calender),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er)으로 발전해 왔다. 그중 최초의 실용적인 역법은 이집트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로마인들에 의해 서유럽에서 1,500년 이상 사용된 율리우스력이다.

    로마 제국의 정치가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BC 44, 일명 시저)는 달력에도 큰 관심을 가져 BC 46년에 달력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 사용하던 로마력은 불완전한 것이었는데, 때마침 이집트를 원정했던 카이사르가 그곳에서 사용하는 간편한 역법을 알아내고 자기 나름대로 로마력을 개정하였다. 이것이 율리우스력으로 오늘날 사용되는 달력의 시초가 되었다. 율리우스력도 한때는 100년마다 하루씩 늦어지고 날짜가 맞지 않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점차 수정되었다.

    당시 로마의 위정자들은 자신의 공적이나 명성을 남기는 데 달력을 이용하였는데 카이사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이 탄생한 7월을 자기의 이름(율리우스)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현재 July(7월)의 어원이다. 율리우스력은 로마 제국 영토 내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전 유럽에 점차 보급되어 16세기 말까지 쓰이다가 그레고리력으로 이어졌다.

    그레고리력은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제정한 태양력으로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는 세계 공통력이다. 가톨릭교회의 축제일인 부활축일의 날짜에 사소한 의견 충돌이 발생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같은 날에 기념하기로 하였고, 그 방안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게 되는 춘분일을 율리우스력에 따라 3월 21일로 확정하였다.

    당초 율리우스력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계산에서 작은 편차가 있었다. 즉, 16세기에 이르러서 천문학적인 계산보다도 약 10일이 빠른 오차가 생겨서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1582년 개정하여 그레고리력으로 부르게 되었다. 개정 내용은 첫째로 1582년 10월 4일 다음에 곧바로 1582년 10월 15일이 따르도록 하여 위에서 설명한 10일의 편차를 제거하였으며, 둘째로 400년마다 3일의 윤일을 공제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 중인 그레고리력은 1699년에 신교를 믿는 독일의 소국가, 1752년에는 영국과 그 식민지, 1753년에는 스웨덴, 1873년에는 일본, 1912년에는 중국, 1918년에는 소련 그리고 1923년에는 그리스에서 채택하여 사용함에 따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대한민국은 음력 1895년 9월 9일 조선정부가 같은 해 음력 11월 17일을(을미개혁, 김홍집 내각) 1896년 1월 1일로 하고, 청의 연호를 버리고 태양력 채택을 기념하여 건양(建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이래 현재까지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달력의 처음 시작은 고대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주변의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일정 기간이 되면 자꾸 강물이 불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인 그들에게 나일강이 범람하여 한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경험과 관찰을 통하여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이들은 1년이 365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러한 상식은 이집트 상인들에 의해 서양으로 전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