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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의 사살로 인해 우리나라의 민심이 환희에 달아오르며 민중에게 독립 의지를 고취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중국 등 일본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을 받고 있던 약소민족은 안중근의 의거를 통해 일본의 팽창 정책이 저지당할 것이라 기대했다고 하네요.
그 당시 온건파였던 이토히로부미의 암살로 한일합병 방침을 정해놓고 기회를 엿보던 일본의 강경파는 합병을 추진하여 강제적인 한일합방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좌절에 빠진 상황에서 안중근의 의거는 이런 좌절을 극복하는 발화점 역할을 했고, 1910년대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 내내 독립운동의 좌표가 되었다고 합니다.
초대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된 후 제2대 내각총리대신은 구로다 기요타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중앙정부의 수뇌부로서 도쿄에 기거하며 강화도 조약(한일수호조약)을 조인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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