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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정말 역모를 꿈꿨나?

나경언의 고변에 의하면 사도세자가 주변의 사람들과 역모를 꿈꾸고 있다는 것인데 이고변으로 세자가 죽임을 당했는데 정말 사도세자는 역모를 꿈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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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활달한파리매77
      활달한파리매77

      안녕하세요. 역모를 꿈꿨는지 아닌지 일생을 설명드리자면 영조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무수리의 아들이므로 변변한 외가도 없고 이럴 때 그를 왕으로 밀어준 것이 노론 세력이었지요. 숙종의 아들이라고는 달랑 둘,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과 이 영조 뿐이었니까요. 그러나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이미 남인, 소론의 세력을 뒤에 업고 있었으니 노론이 선택할 사람이라고는 영조 뿐이었습니다.이렇게 왕을 선택해 다음 왕으로 미는 작업은 각 당이 살아 남느냐, 죽느냐를 결정 짓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자기 당이 선택한 왕자가 왕위에만 올라준다면, 세력을 확장 시켜나갈 좋은 기회를 얻는 것이니까요.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영조는 왕위에 올랐습니다.물론 노론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지요.

      자기를 왕위에 올려 준 것도 그렇지만, 영조의 왕자 시절 스승도 대부분 노론 출신이었기 때문에 영조가 노론과 친밀했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영조가 위대한 군왕이었다는 것은 노론만을 편애하지 않으데 있지요.그러나 영조는 노론의 전횡을 막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해 각당을 고루 기용하는 방법으로 정치를 해나갔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사도세자가 어느덧 15살 무렵이 되었지요. 이 때 영조는 세자에게 자신의 업무를 대신 보게 합니다. 대리청정이라고 하지요. 물론 중요한 결정은 영조 자신이 했지만 사소한 업무처리를 사도세자에게 맡겼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탕평책을 실시한다고는 했지만 거대한 노론 세력에 왕권마저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사도세자가 알게 된 것이지요.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우직하고 사리분별을 잘하는 똑똑한 왕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당황케하는 노골적인 소론에 대한 편중, 노론에 대한 비판,답답한 영조는 자식을 야단칠 수 밖에 없었겠지요.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노론을 적으로 돌리나.. 그러나 우직한 사도세자는 트릭을 알지 못했습니다. 맞부딪히면 깨진다는 것을 몰랐지요. 이렇게해서 사도세자는 노론을 적으로 돌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계속된 노론의 모함과 영조의 질책,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질책을 아주 두려워했다고 하는군요. 그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이런 증상은 갈수록 심해져서, 화가나면 사람들을 칼로 죽이고, 옷을 입지 못하는 의대증까지 앓게 되고 궁 안으로 여승을 끌여들이기까지 합니다.

      노론 측에서는 좋은 기회였겠지요. 왕비 정순왕후를 비롯해, 숙의 문씨, 친누이 화완옹주까지... 그들은 끈임없이 사도세자의 비행을 왕께 고해바쳤습니다.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노론의 영수)마저 그를 포기한 상황이었으니 사도세자는 천애고아와 다름이 없었습니다.그를 지원하는 소론 세력이야 노론에다 비하면 세발의 피였고... 게다가 날이 갈수록 미친 짓은 늘어나고.... 결국 궁궐을 빠져나가 평안도로 몰래 여행을 하는 사태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 넣게 됩니다. 3개월 간의 평안도 여행 이후 사도세자는 뒤주에 갖히게 되고 이후로 영영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하게 되지요.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각에서는 역모를 사실로 인정합니다.

      세자가 영조 37년 3월에 자기 대신 내관을 앉혀놓고 영조 몰래 평양에 다녀온 일이 있는데 이 평양행이 영조를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를 준비하는 움직임이었으며 이 때문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일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었던 세자가 과연 쿠데타를 모의할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있고, 세자가 평양에서 돌아오자 평양 밀행을 문제 삼은 유생들의 상소가 잇따라 올라올 정도로 세자의 움직임이 공공연히 간파당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역모를 꾸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사도세자 선은 역모를 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영조의 나이가 많았고, 영조가 승하하면 그 자리는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아올 것인데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죠. 결국, 세손 산(후의 정조)을 즉위시키기 위해 세자 선이 제거되었다 이렇게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 - -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려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사도 세자는 정말 역모를 꾸몄을까? < 조선 역사 ... - 경남연합신문

      http://www.knyhnews.co.kr › news › articleView

      2020. 10. 13. — 나경언이 고변한 내용은 세자가 주변의 환시(宦寺)들과 결탁하여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경언은 고변으로 인해 친국(親鞫: 임금이 친히 중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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