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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백로27
청렴한백로2723.01.13

8.15 대통령 저격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캐네디 대통령, 일본의 아베총리 모두 저격에 의해서 고인이 되셨는데요

우리나라도 박정희 대통령을 노린 8.15 저격사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범인은 누구이며 왜 저격을 하였는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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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4년 8월 15일에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은

    조총련 청년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총을 쐈으나,

    옆에 있던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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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15 대동령저격사건은 1974년 9월15일 서울특별시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광복 제29주년 기념식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이 당시 대통령 박정희를 저격한 사건입니다.

    오전 10시23분,, 광복절 경축사를 낭독하던 대통령을 향해 청중석 뒤에서 문세광이 나와 권총을 발사합니다.

    총탄이 빗나가 대통령은 연설대 뒤로 몸을 피하여 무사했으나, 이어 발사한 두번째 탄이 단상에 있던 대통령 부인 육영수의 머리를 맞힙니다.

    또 문세광이 연단에 뛰어나가며 권총을 발사할 때 경호팀이 응사한 총탄에 맞아 합창단의 한 여학생이 절명하고,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육영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이송되어 5시간 이상의 수술을 받으나, 오후 7시에 사망합니다.

    범인 문세광은 재일조총련계 한국교포 2세로 일본식 이름은 난조 세이코였으며, 일본인 요시이 유키오라는 이름의 여권으로 입국하였습니다.

    1974년 5월 북한의 대일공작선이며, 재일교포 북송선이기도 한 만경봉호에서 그해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대통령을 저격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범인이 사용한 권총이 일본의 경찰관서에서 절취한 것임이 나오고 범인이 소지하였던 위조여권 발부한 데에 대한 책임, 저격범의 공범 중 일본인이 있었다는 사실 등으로 일본 정부는 법률적 내지 도의적 책임을 면할수 없게되었습니다.

    아 사건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불편해졌으나 일본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9월19일 집권당인 일본자유민주당 부총재인 시나 에쓰사부로가 수상 다나카 가쿠에이의 친서를 휴대하고 진사특사로 한국을 다녀감으로 양국관계가 회복되었으며, 범인이었던 문세광은 그해 12월 1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며 20일 집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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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1974년 8월 15일 제 29주년 광복절 기념식 행사장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던 도중인 10시 30분경 발생한 것으로써 조총련계 문세광(文世光, 당시 22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육영사 여사가 운명하셨습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을 침투시켜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좀 더 치밀한 계획하에 일본 조총련 소속 간첩 문세광을 1974년 8.15 광복절 행사장에 침투시켜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던 것으로 정황상 북한의 최고위층 지시로 자행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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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제29주년 기념식에서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권총을 발사한 사건 입니다.

    이유는 북한의 대일공작선이자 재일교포 북송선이기도 한 만경봉호 에서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을 저격하라는 지령을 받고 이를 실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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