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덕태자는 19세에 이미 고모인 스이코 덴노의 섭정이었는데요
당시 덴노의 외척 겸 자기 할아버지인 소가노 우마코라는 대신이 엄청나게 밀어줬기 때문입니다.
당대 최고의 귀족을 뒷배로 둔 만큼 파격적일 정도로 일을 밀어 붙일 수가 있어서
불교를 포함한 해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호류지를 비롯한 절도 많이 세우고
헌법과 계위를 만들어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스이코덴노보다 일찍 죽어서 태자면서도 천황이 되지 못했는데
오히려 이런 비극성이 드라마틱 해서 일본에선 대대로 숭배/연구 되었고 현대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해외문화를 받아 들이기 위해선 당시 기술력으론 당연히 한반도랑 교류 할 수 밖에 없었기에
백제와 일본의 교류는 엄청 빈번하게 이루어 졌고
그래서 스이코 덴노가 당시 일본 최고의 사찰이었던 아스카데라를 완성하자 백제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사절단을 보냈으며 그래서 아좌태자가 쇼도쿠태자와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좌, 혜총과 혜자는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에 실존여부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아좌는 "당시 백제와 일본의 교류를 생각하면 이름이 뭐던 태자 한두명은 오고갔을 것"
정도로는 인정 받는데
혜자는 생뚱맞게 고구려 사람이 튀어나와서 더욱 의심받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