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운동회의 유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활동하기 좋은 계절 가을이 되면
학교마다 열띤 응원과 함께
가을운동회가 열립니다.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 운동회의
유래는 언제부터 일까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의 운동회 형식은 일본에서 유래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현재까지 잔재로 남은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운동회의 역사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운동회의 역사는 일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6] 큰 틀에서 본다면 운동회의 기원은 흔히 유럽이라 추측되나, 영국이나 인도의 Sports Day, 미국의 Field Day는 특정 종목에 한정되고 있고, 개인의 특기나 의지에 따른 자유 참가 형식이다. 전원이 참가하여 프로그램에 따라 경기 및 연기를 펼치는 형식은 근대 일본의 독특한 체육적 행사이며, 이런 형태의 운동회를 개최하고 있는 지역은 남한, 북한, 일부 동남아시아 등 뿐이다.
일본에서 운동회의 기원은 1874년 해군병학교 기숙사에서 열린 "경투유희회(競闘遊戯会)"로 여겨지고 있다.[8] 영국인 목사 "프레데릭 윌리엄 스트레인지"의 지도에 의해 주최되었으며, 스트레인지는 후에 전근한 도쿄대학 예비문에서도 운동회를 개최하였다.
학교 차원에서의 현재와 같은 운동회는 삿포로농학교(현, 홋카이도대학)에서 1878년 5월 25일에 열린 운동회가 학교연례행사로 정착한 사례라고 한다. 삿포로농학교에서는 매년 여름이 되면 장·단거리 경주, 높이뛰기 등 육상종목과 함께 돼지몰기, 2인3각, 장애물경주 등이 펼쳐졌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편으로 나뉘어 경쟁을 하는 등 현재 운동회의 모습과 유사한 형태로 변화해 갔다고 한다.
이 운동회는 삿포로에 있은 초등학교, 중학교에도 점점 전파되었고, 또한 1883년에는 도쿄대학에서도 정기적으로 열리기 시작하였다. 1885년 초대 문부대신에 취임한 "모리 아리노리(森有礼)"가 체육에 의한 집단훈련을 중시하고 운동회를 적극 장려하면서, 이후 대부분의 학교에서 운동회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현재까지 잔재로 남은 것이다.
1960년대 대한민국의 운동회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제를 하는 현장과도 같았다. 운동회가 열리면 부모님과 친척들까지 출동하여 한자리에 모여서 운동회에 참가하는 자녀가 쉬는쉬간이 되면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당시 한 집에서 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함께 살던 대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동네 어르신과 주민들까지 모두 나서 한쪽에서 술판을 벌이거나 따로 운동종목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요즘의 총동문회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출처: 나무위키 운동회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의 운동회의 역사는 일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일본에서 운동회의 기원은 1874년 해군병학교 기숙사에서 열린 경투유희회 로 여겨지고있습니다.
영국인 목사 프레데릭 윌리엄 스트레인지 의 지도에 의해 주최되었으며 스트레인지는 후에 전근한 토교대학 예비문에서도 운동회를 개최했습니다.
학교 차원에서의 현재와 같은 운동회는 삿포로농학교에서 1878년 5월 25일 열린 운동회가 학교연례행사로 정착한 사례라고 하며, 이 운동회는 삿포로에 있는 초중등에 전파되어 1883년 도쿄대학에서도 정기적으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의 운동회는 1896년 5월 2일 동소문 밖 삼선평(현 삼선교)에서 당시 영어학교 학생들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당시는 운동회라 하지 않고 화류회라 했는데 영국인 교사 허치슨과 핼리팩스에 의해 진행되었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조정의 대신들 모두와 각국 공사 등 내외 고관, 신사가 모두 참석했으며, 운동장 둘레에 붉은 깃발을, 입구와 대청에는 만국기를 나부끼게 한 가운데 영어학교 학생들의 매스 게임으로 개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국공사관의 서기관인 윌니스가 진행을, 허치슨이 심판을 핼리팩스가 기록을 담당하였고, 종목은 3백보 경주, 대포알 던지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 육상경기가 베풀어졌다. 그 중 인기를 끌었던 것은 20필의 당나귀를 타고 달린 당나귀 경주였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영국 총영사 부인이 입상자를 호명, 갈채 속에 상품을 수여했는데, 상해로부터 사온 은시계, 시계줄, 장갑, 은병, 주머니칼, 명함갑, 등 값진 외국 제품들이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황제폐하를 위한 만세삼창,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천세삼창을 부르고 화류회를 끝냈다.
개화기 운동회에서의 경주 스타트는 신호는 낭만적이었다. 검은 우산을 받쳐들고 "제자리에 서옵시오" 하고 준비동작을 시킨 다음 우산을 아래로 잡아 내리면 일제히 달려나갔던 것이다. 모두가 양반 자제들이라 경어를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운동종목의 명칭도 시적으로 문장화하고 있다. 장대높이뛰기를 잠자리가 나부낀다는 뜻인 '청령번풍'( 飜風)이라 했고 한쪽 발 뜀질경주를 백로가 미꾸라지 찾듯한다 하여 '백로채추'(白鷺採 ), 세발뛰기를 토끼가 달에서 뛰듯 한다 하여 '옥토약월'(玉 躍月)이라 하여 한국인의 정서주의가 외래 스포츠까지 주체화 시키고 있었다.
어전 운동회라 하여 고종 황제 앞에 학생들이 가서 병식체조와 도수체조 등 매스게임을 베푸는 전통도 있었다. 여학생들도 여전 매스게임을 하였는데, 반소매 차림에 팔뚝이 드러나 보였던지 떼지어 속살을 드러내서 임금을 현혹시키려 했다고 보수파 인사들은 격분하였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운동회의 역사는 일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운동회의 기원은 흔히 유럽이라 추측되나, 전원이 참가하여 프로그램에 따라 경기 및 연기를 펼치는 형식은 근대 일본의 독특한 체육적 행사이며, 이런 형태의 운동회를 개최하고 있는 지역은 남한, 북한, 일부 동남아시아 등 뿐이라 합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현재까지 잔재로 남은 것 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타깝게도 일제의 잔재입니다.
그 옛날 학창시절 가을 운동회가 되면 온동네 사람들이 어린이나 어른 할것없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함께 즐겼던 잔치!~~ 일제강점기 일본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고유의 문화로 계승해야죠!^^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운동회의 역사는 일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전원이 참가하여 프로그램에 따라 경기 및 연기를 펼치는 형식은 근대 일본의 독특한 체육적 행사이며, 이런 형태의 운동회를 개최하고 있는 지역은 남한, 북한, 일부 동남아시아 등 뿐이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렸을 때 보통 가을에 운동회를 많이 하던 기억이 나네여. 우리 나라의 최초의 운동회는 1896년 5월 2일에 영어 학교(英語學校)에서 평양의 삼선평(三仙坪)으로 소풍을 가서 영국인 교사 허치슨(Hutchison)의 지도 아래 화류회(花柳會)라는 운동회를 열었던 것이 시초가 된다고 합니다. 당시의 경기종목은 300·600·1,350보경주와 공던지기·대포알던지기·멀리뛰기·높이뛰기·이인삼각·당나귀달리기·동아줄끌기(12인조) 등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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