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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안경곰147
빼어난안경곰14724.04.19

조선시대에도 혼인을 하면 문서로 남겨두고 그런게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현대사회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면 혼인신고서라는 걸 행정처리해서 기록으로 남게 되잖아요. 조선시대에 이처럼 혼인을 하면 현대의 혼인신고서처럼 혼인신고같은 문서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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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혼인신고서와 같은 별도의 문서를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혼인을 하게 되면 신랑과 신부의 가족들이 서로 혼인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혼인을 인정받았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혼인을 등록하는 문서가 존재하기도 했으나

    이는 현대의 혼인신고서와는 성격이 다르며,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문서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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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나 조선 시대에는 혼인을 증명 하는 혼인 신고 서류등은 존재 하지 않았지만 혼례 사주 단자를 본다 던지 혼례 형식을 결정 하는데 필요한 각종 문서들이 혼인을 증명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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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혼인신고와 유사한 개념으로 '납체', '납징', '고기', '책비', '친영'의 다섯 가지 절차로 이루어진 '육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양반 계층에만 한정되어 있던 복잡한 형식이었으며 일반 백성들은 육례를 따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납채', '연길', '친영' 세 가지의 '삼례'만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시집을 가게 되면 친정부모의 호적에서 제적되고 남편의 호적에 입적되는 '호적편입호주제'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혼인신고 없이도 혼인 여부가 파악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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