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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다람쥐109
화목한다람쥐10923.09.10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는 어떤건가요??

안녕하세요

돈이라는게 옛날에는 물물교환 부터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뎅요

화폐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게 언제고 어떤이름으로 돈이 처음나왓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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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는 성종대에 만들어진 '건원중보(철전)'입니다. 해동통보는 훨씬 뒤인 15대 숙종대에 문벌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화폐정책을 펼쳤을 때 주조된 동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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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시대별 화폐자료입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고려시대

    고려 초기인 996년(성종 15)에 정부가 집권적 지배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철전을 주조·유통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상에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화폐를 만들어 법화(法貨)로 사용하려 했던 최초의 시도이다. 그때부터 1세기가 지난 1097년(숙종 2)에 동전인 해동통보(海東通寶)를 만들어 사용했고, 그 이후 동국통보(東國通寶)·동국중보(東國重寶)·삼한통보(三韓通寶)·삼한중보(三韓重寶)·해동중보(海東重寶) 등이 주조·유통되었다. 또한 1101년 은병(銀甁)이 주조·유통된 이후 소은병(小銀甁)·쇄은(碎銀) 등 칭량은화(稱量銀貨)가 통용되고, 1392년(공양왕 4)에 송(宋)나라의 회자(會子)와 원(元)나라의 보초제(寶制)를 수용하여 저화(楮貨:紙幣)의 통용을 시도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송·원·명(明) 등 중국의 각종 화폐가 유입되어 국내의 일부 유통계와 대외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려는 화폐가 유통될 만큼 사회 경제적 기반이 성숙되지 않았고, 화폐원료의 공급도 원활하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 법화로 사용하려 했던 철전·동전·저화 등의 화폐는 계속 유통되지 못하고, 쌀[米]·포(布) 등 물품화폐와 칭량금화·칭량은화 등이 널리 유통되었다.

    조선 전기

    정부는 조선건국 초기부터 집권적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물품화폐와 칭량금화·칭량은화 등이 유통되는 자연 경제적 유통질서를 극복하고 저화나 동전 등을 법화로 유통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1408년(태종 8)에 칭량은화의 통용을 금지시켰고, 이어 1410년부터 저화를 법화로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1423년(세종 5)에는 저화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조선통보(朝鮮通寶)라는 동전을 주조해서 유통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통보 역시 법화로서의 기능을 못하자, 1445년부터 정부에서는 동전유통책의 실패에 대비하여 일찍부터 일반 유통계를 지배하던 물품화폐인 포의 법화화(法貨化)를 시도했다. 그러나 저화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일부에서만 유통되었다. 국가화폐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없게 되자, 1464년(세조 10)에는 포·쌀 등 물품화폐와 저화·동전 등 명목화폐를 절충·보완한 전폐(箭幣)를 철로 만들어서 비상시에는 화살촉으로, 평화시에는 화폐로 사용할 것을 결정·추진했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도 고려에 비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화폐가 유통될 정도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고, 화폐원료의 공급난이나 화폐정책의 불합리성은 여전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저화나 동전 등은 법화로 계속 유통되지 못하고 포·쌀 등 물품화폐와 칭량은화가 유통되었다.

    ■ 조선 후기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그 이전보다 화폐유통을 위한 여러 여건이 보다 성숙된 상황에서 동전을 법화로 유통시키기 위한 화폐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명목화폐 통용을 필요로 하는 조선 사회의 가치체계와 생산양식의 진보적 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전란으로 파탄에 직면한 국가경제 재건책의 일환으로 동전유통정책이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1624년(인조 3) 동전을 주조·유통하기로 결정한 이후 1633년 팔분서체(八分書體) 조선통보, 1646년 십전통보(十錢通寶) 등을 주조하여 법화로 유통·보급시키려 했다. 또한 조선 전기에 주조되어 전해오던 조선통보를 잠깐 시험적으로 통용했고, 후에는 중국의 각종 동전을 싼 값으로 수입하여 유통하기도 했다. 그결과 국가의 화폐유통정책이 호란(胡亂)이나 화폐원료의 공급난 등으로 중단을 거듭하는 중에서도 1640년대에는 동전이 개성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방에서 원활히 통용되었다. 국가의 화폐정책이 중단된 지 20년이 지난 1678년(숙종 4)부터 동전인 상평통보(常平通寶)가 주조되기 시작했다. 그후 상평청·호조 등 중앙관서와 각 군영 및 지방관청에서 필요할 때마다 상평통보를 주조함으로써 상평통보의 유통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화폐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이처럼 상평통보의 유통보급으로 확대·발전된 화폐경제는 조선 사회 성리학 중심의 중세적 가치체계와 농업 중심의 생산양식을 해체시키고 근대를 지향하게 하는 등 중요한 역사적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처럼 상평통보로 인해 유통체제가 비교적 안정되었는데, 흥선대원군이 발행한 악화(惡貨) 당백전(當百錢)과 중국에서 수입된 동전이 다량 유통됨으로써 유통체제는 극도로 문란해졌다(→ 당백전). 이는 대체로 봉건 말기에 중앙정부의 급증하는 재정수요에 충당하기 위해 악화를 남발함으로써 나타난다는 화폐제도의 문란상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같다. 조선정부는 화폐제도의 문란과 사회경제적 혼란을 주체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1876년에 개항을 단행하여 근대 화폐를 사용하는 일본 및 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빈번하게 통상거래를 하게 되었다. 통상거래과정에서 품질이 통일되지 못하고 운반이 불편하며 가치변동이 심한 전근대적 상평통보 유통체제의 모순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정부는 상평통보 유통체제를 개혁, 서양의 근대 금은본위제도의 수용을 위해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화폐개혁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우선 1882년에 수공업적 기술로 금화·은화를 주조·유통시키려고 했다. 그 이듬해에는 상설 조폐기관으로 전환국(典圜局)을 설치한 후에 서양의 기계기술을 도입하여 근대 금화·은화의 주조·유통을 시도했다. 1894년에는 갑오개혁의 추진과정에서 상평통보의 주조·발행을 중단시키는 한편, 신식화폐발행장정(新式貨幣發行章程)을 공포하고 우리 역사상 최초로 근대 은본위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로써 본위화폐로 5냥 은화, 보조화폐로 1냥 은화, 2전(錢) 5푼(分) 백동화(白銅貨), 5푼 적동화(赤銅貨), 1푼 황동화(黃銅貨) 등 모두 5종류의 근대 화폐를 주조하여 통용되고 있던 다른 화폐와 병용했다.

    그러나 신식화폐발행장정에는 일본 화폐의 국내 통용이 규정되었기 때문에 국가 화폐권의 자주독립성이 훼손되었다. 또한 은본위제도가 실시된 후 본위은화는 극소량이 주조되고 보조 백동화만 남발되어 화폐제도의 문란과 제반 사회경제적 혼란이 일어났다. 이에 조선정부는 화폐금융권의 자주독립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백동화 인플레이션 등 은본위제도의 모순과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1901년(광무 5)에 금본위제도의 수용을 골자로 하는 '광무5년화폐조례'(光武五年貨幣條例)와 '태환금권조례'(兌換金券條例) 등을 제정·공포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일본측의 간섭으로 시행되지 못한 채 부분적으로 수정·보완되어 1905년에 '광무9년화폐조례'로 공포·시행되었다. 이 개혁안은 우리나라 최초로 명실상부한 근대 금본위제도가 실시되었는데, 일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 다이이치은행이 발권은행이 되어 화폐주조에 착수했으며, 1909년에는 한국은행이 설립되어 화폐발권을 포함한 제일은행의 업무 일체를 인계받았다. 즉 이러한 화폐정리사업은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재정정리의 일환으로 실시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한일합병 후인 1910년 12월 21일부터 일본 다이이치은행권을 대신하여 한국은행이 화폐발권을 시작했다. 1911년 2월 조선은행법을 공포하고 그해 8월 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개칭함에 따라 한국은행권은 조선은행권으로 인정되었다. 조선은행은 1914년 9월에 100원권을 발행했고, 이듬해 1915년 1원권·5원권·10원권을 발행했다. 발행된 조선은행권은 만주지방과 중국에까지 유통되었으며, 1945년 8·15해방 때의 발행액수는 49억에 이르렀다.

    ■ 광복 후

    해방 후 군정법령에 의해 조선은행권이 유일한 법화로서 계속 유통되었는데, 미군정의 거액지출 및 전후 경제질서의 혼란으로 통화발행고가 크게 늘어 1949년말에는 751억 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러한 통화팽창으로 인해 중심권의 종류가 10원권에서 100원권으로 바뀌었다. 또한 새로운 양식의 5원권과 10원권, 5전·10전·50전 등의 소액권도 발행하여 화폐제도를 정비하다가 1950년 6월에는 한국은행이 발족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은행법이 제정되었는데, 이로써 완전한 관리통화제에 들어섰다. 이리하여 1950년 처음으로 한국은행권 1,000원권과 100원권을 발행했으며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는 제1차 통화조치를 단행했다. 1952년 10월 한국조폐공사를 설치하여 한국은행권의 인쇄권을 전담하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신1,000원권과 신500원권을 인쇄했다. 1953년 2월 제2차 통화조치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원화에서 환화로 개칭해 100:1로 평가절하를 했다. 이때 인쇄된 지폐는 미연방국에서 인쇄된 화폐를 반입해 발행했는데, 이 지폐를 국내제조권으로 대체하기 위해 같은 해 3월 신10환권, 12월 신100환권을 발행했다. 1959년 정부의 승인을 얻어 100환 니켈화, 50환 백동화, 10환 청동화를 발행했다. 1961년 5·16군사혁명 이후 군사정권은 1962년 제3차 통화조치를 단행하여 화폐를 1/10로 호칭절하하는 동시에 화폐단위를 원으로 변경시켰다. 1962년에는 한국조폐공사에서 신10원권과 신100원권을 발행했고, 소액거래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새로이 10전권과 50전권을 발행했으나, 통용되지 않았다. 1965년 이후에는 구50환 및 구10환에 대체할 목적으로 1원화 및 5원화, 새로이 10원화가 순수한 국내기술에 의해 동과 아연으로 주조되었다. 1970년대에는 화폐의 거래량이 늘어 5,000원권과 10,000원권이 발행되기에 이르렀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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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국사략, 해동역사에는 기원전 957년 기자조선 흥평왕 때 우리나라 최초 화폐인 자모전이 사용되었다 기록되어있으며 마한에서도 기원전 169년 동전을 처음 주조, 동옥저와 신하에서 금, 은 무문전을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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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화폐를 사용했다는 기록들이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기록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동국사략』과 『해동역사』에는 기원전 957년 기자조선 흥평왕 때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인 자모전이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한에서도 기원전 169년에 동전을 처음으로 주조하였으며, 동옥저와 신라에서는 금ㆍ은 무문전을 사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발견된 최초의 화폐는 고려시대때 만들어진 건원중보(996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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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우라나라 최초의 화폐는 오로라였습니다. 오로라는 우라나라의 상징인 오로라를 본떠 만든 화폐로,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로라는 우라나라의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였으며, 일반 사람들은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우라나라의 화폐 체계는 19세기 중반에 근대화되었습니다. 우라나라 정부는 금본위제를 도입하고, 금화와 은화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종이돈도 발행하기 시작하여, 우라나라의 화폐 체계는 금속 화폐와 종이 화폐가 혼용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20세기 초반, 우라나라 정부는 화폐 개혁을 통해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화폐를 종이 돈으로 통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라나라의 화폐는 현재까지도 종이 돈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우라나라 최초의 화폐인 오로라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름: 오로라

    재질: 금, 은

    사용 기간: 18세기 중반 ~ 19세기 중반

    사용 범위: 우라나라 왕실

    우라나라 최초의 화폐인 오로라는 우라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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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에 건원중보(乾元重寶)가 우리 나라의 첫 화폐인데 고려 시대 996년에 (건원(乾元), 성종15년)에 만든 한국 최초의 화폐입니다. 본래 중국 당나라 때 발행한 화폐를 모방해서 주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그라미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고, 앞면에는 ‘乾元重寶’(건원중보), 뒷면에는 ‘東國’(동국)이라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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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금속 화폐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고려 성종 때 만들어진 건원중보습니다.

    996년(성종 15)에 발행된 건원중보는 철로 만든 철전과 구리로 만든 동전 등 두 종류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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