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세기에 이르러 가야 연맹은 백제와 신라의 중간에서 두 나라의 압력을 계속 받아 위축되었다. 이는 한강 유역을 잃은 백제가 그 보상을 가야 지역에서 찾으려 하였고, 신라도 이에 자극을 받아 가야지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백제와 신라가 이미 중앙 집권 체제를 마련한 것에 비하여 가야 연맹은 각 소국이 독자적인 정치 기반을 유지했으므로 그 지배력을 집중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가야 연맹은 지역적으로 백제와 신라의 중간에 위치하여 두 나라의 세력다툼을 위한 전장이 되었으며, 이들 나라의 압력을 받으면서 불안한 정치 상황이 계속되었다.
가야 연맹은 두 나라의 침략으로 영토가 점차 축소되다가 신라 법흥왕 때에는 금관가야(532)가, 진흥왕 때에는 대가야(562)가 멸망하였다. 국력이 서로 비슷한 수준이었던 가야 연맹은 결국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한 채 멸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