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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03

조선이 되면서 고려의 왕족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이성계의 조선이 건국 되고 나서 고려의 왕족이었던 왕씨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조선의 권력자들이 고려의 부흥을 경계하여 다 죽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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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조선과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왕씨 일족을

    죽였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양왕을 포함한 고려 왕실의 왕씨들은 강화도와 거제도, 강원도 삼척으로 유배, 공양군은 삼척으로 유배되는데 이때 공양군 후송을 맡은 중추원 부사 정남진의 손에 공양군과 아들들은 삼척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된 고려 왕씨 일족들은 후송 임무를 맡은 형조전서 윤방경에게 수장, 거제도로 유배 가던 고려 왕씨들도 후송을 맡은 손흥중에게 수장당합니다.

    1394년 4월 20일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 중앙과 지방에 명령하여 왕씨의 남은 자손을 대대적으로 수색해 이들을 모두 목 베었다 라고 기록되며, 서해 바다 수장형뿐 아니라 왕씨를 색출해 절차 없이 교살형에 처했다고 하며 왕씨들은 성을 점 하나 추가해 옥씨로 바꾸거나 전씨로 바꾸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왕씨 숙청은 이방원이 1413년 중간, 왕씨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은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등을 유배보내고 정몽주를 따르던 최측근 8명은 곤장 100대를 때려 사망케 합니다. 고려 왕씨 왕족들은 거제도와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1393년 이성계는 공양왕 동생을 불러 자신은 왕씨들을 해칠 마음이 없다며 육지에 살게 합니다. 그러나 경남에서 김가행 박중질 등이 왕화 왕거와 접촉하여 고려 왕실 복원운동을 꾀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1인자가 못하면 2인자가 나서듯이 정도전이 나서서 다시 왕씨들을 거제도와 강화도로 유배를 보냅니다. 공양왕과 자식들은 유배를 가는 도중에 후송을 맡은 중추원 부사 정남진의 손에 삼척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강화도로 유배가던 왕씨들 모두는 김포에서 강화도로 가는 강화나루에서 수장당합니다. 1394년 4월 20일 조선왕조 태조실록에는 중앙과 지방에 명령하여 왕씨의 남은 자손들을 대대적으로 수색하여 목을 베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해바다 수장형 뿐만아니라 교살형에 처해진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왕건의 후예 오아씨들은 거의 다 몰락 합니다. 태조 3년 순흥군 왕승, 정양군 왕우 일가와 여자, 방계를 제외하고 왕위에 가까운 남자 후손 135명이 삼척, 강화도, 거제도에서 제거되었는데 1차 왕자의난 (무인정사)때 죽은 사람들까지 아울러 놓은 《개성 왕씨 대동보》에 의하면 150여 명이라고 합니다. 제34대 공양왕 중심으로 직계 유력 남자 후손들만 제거한 후, 남은 왕씨들은 외가 성으로, 사성 개성 왕씨들은 원래 성씨로 되돌려서 왕씨만 아니게 만드는 선에서 끝났다. 이 같은 조치로 태조 신성대왕 왕건이래 잦은 사성 정책으로 불어난 개성 왕씨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