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7대 성종과 폐비윤씨의 소생으로 집권 초기에는 안정적 치세를 하다가 금삼의 피를 보고 확 돌아버리게 됩니다. 무오사화로 신진 사대부들인 사림파들이 희생되었고 갑자사화로 사림파는 물론이고 훈구파들도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는 폐비윤씨가 후궁들의 모함으로 죽게 된 사실을 알고 폭정을 일삼게 되고 닥치는대로 죽이게 됩니다.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동시에 여색에 빠져 국정을 태만이 하게 됨에 따라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교동도로 유배를 간 뒤에 향년 2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