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나 백제는 신라의 향찰 같은 것이 없었나요?
신라의 경우 향찰표기로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고구려나 백제에서 자기들만의 표기법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라의 향찰표기 같은 것이
고구려나 백제에는 존재하지 않았나요?
고구려와 백제는 어떤 방식으로 글을 표기를 한 것인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말의 표기는 고유명사나 단편적인 단어표기에서 발생해 이두, 구결, 향찰의 순서로 발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향찰은 차자표기법 중 가장 발달한 표기법인데 고구려에서 발생한 초기 이두문인 변체한문이 신라로 전해져 신라에서 한자를 우리말 어순으로 배열하는 문체가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 후 7세기경에 한문에 토를 다는 구결이 발달했고, 향찰은 구결과 우리말 어순의 이두가 접합된 형태로 보인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두 표기법은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6세기 말 이후 차자 표기법이 정체 또는 퇴조하였고, 신라에서는 6세기 말부터 7세기로 접어들면서 표기법 상의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신라에서만 이두가 발전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데, 국어학계 일각에서는 무열왕이 즉위한 7세기 중반까지 당나라의 서신에 쓰인 한문을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인이 드물었다는 삼국사기의 서술을 바탕으로,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한자를 100여 년 늦게 도입한 신라는 상대적으로 한문 이해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자국어 표기를 발전시킨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반면 역사학계에서는 오랫동안 구두 전달 위주로 행정 명령을 내린 신라의 특수성이 한자 도입 이후 문서에도 반영되어 구어체를 살릴 수 있는 이두 개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있으며, 월성 해자 목간 등에서 발견되는 이두의 내용과 어휘를 살펴보면 일상적인 구두 전달 체계를 자세히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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