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는 왜 핵폭탄을 먼저 준비했으면서 개발은 늦어진건가요?
과거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는 핵폭탄을 먼저 준비했다고 들었는데요.
당시 독일이 물리학에서 앞서있는 국가였다던데, 어째서 미국보다 핵폭탄 개발은 늦어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당시 전쟁을 하느라 정신이없어서 당장 쓸수 있는 무기들을 개발하는데 더 급급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8년 핵분열 현상이 발견되자 당시 나치 독일은 전쟁을 준비하면서 핵분열현상이 무기로 쓰일 수있음을 알아채고 물리학자들을 초빙해 우란페어라인을 조직해 핵분열의 무기화, 무기이용가능성을 연구하지만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이들을 군에 동원하는 바람에 계획이 중단됩니다.
일시 중단된 핵무기개발 계획은 폴란드 침공이 시작된 1939년 9월 1일 다시 시작되게 됩니다.
나치 독일은 벨기에에서 4천톤의 우라늄 광석을 채굴, 이 중수탱크는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측에서 특공대를 보내 폭파, 중수를 이동하는 배도 같이 수장하며 연구에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또 독일과학자들은 감속재로 중수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데 실제 흑연도 사용할수 있었으나 흑연은 일부 과학자들의 잘못된 실험 결과로 조기에 배제됩니다. 또 국력 문제때문에 실제 핵무기 개발에 이르기도 어려웠고, 미국이 우려하고 있던 바와 달리 히틀러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핵물리학을 연구하던 유대인 학자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계에서 강제 추방, 결과적으로 핵물리학에 대한 투자 자체가 빈약해진 상태였습니다.
또 핵물리학 연구의 기본 장비랄수있는 사이클로트론조타 없어 1942년 군수장관인 알베르트 슈페어가 세계최대급 사이클로트론 건설 예산을 주겠다고 제안하자 연구팀은 오히려 아직은 제대로 만들수 없으니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고 했으며 결국 종전때까지 나치 독일이 사용할 수있었던 사이클로트론은 프랑스 점령지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단 1개뿐이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비효율적인 반응로 설계 문제로, 이 반응로는 하이젠베르크 작품이었는데 그는 이 설계도를 고의로 연합국에 노출시킴으로 독일의 핵개발 계획을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반응로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임계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사실보다 독일이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하려 한다는 우려가 절대적으로 고평가되었고 이 문제로 일부 학자들은 하이젠베르크가 독일의 핵개발 능력이 생각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연합국에 알리려 했다가 역효과만 부른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이 벨기에에서 손에 넣었던 천연우라늄 및 광석 전량이 처음 독일 손에 들어갔을 때 상태 그대로 미국의 수중에 떨어질 정도로 독일은 핵무기 또는 핵에너지 개발에 기초적인 접근조차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히틀러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핵물리학을 연구하던 많은 유대인 학자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계에서 강제추방되었고 결과적으로 핵물리학에 대한 투자 자체가 매우 빈약해지며 실패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치 독일은 1932년 노벨상을 수상하고 양자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우라늄계획을 수립했으며 곧바로 한과 슈트라스만 발터보테 한스가이거 등을 합류하여 구머스도르프와 스타티름에서 개발을 진행하였습니다. 당시 독일은 점령지인 노르웨이에서 400여리터의 중수를 빼앗았고 벨기에로부터 1200톤의 우라늄을 빼앗고 우라늄235도 쉽게 분리하는 방법도 개발해 둔 상태였다고 합니다. 소형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실험한 흔적도 독일 북부 뤼겐섬에서 발견되었으며 소형 핵탄두를 장착하여 영국과 미국 등을 공격할 계획도 있었으나 1톤의 핵탄두로 미국본토까지 미사일을 쏘는 것은 현실적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전쟁의 패전으로 빛이 바래고 말았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8년에 핵분열현상이 발견되자, 과학자들은 "저 핵분열로 일어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무기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당시 나치 독일은 전쟁을 준비하면서 핵분열현상이 무기로 쓰일 수 있음을 알아채곤 물리학자들을 초빙해 우란페어라인 (Uranverein/우라늄 클럽)을 조직하고 핵분열의 무기화, 무기이용가능성을 연구해왔지만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이들을 군에 동원하는 바람에 계획은 그대로 중단되었습니다.
이후에도 개발을 재개 하였으나 설계 등의 문제로 개발은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독일이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에 크게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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