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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30

고조선은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나요?

고조선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단군이라는 지도자를 가지고 있는 고조선이 어떤 이유로 그 끝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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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23.08.30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조선은 중계무역을 통해서 많은 이득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들이 반발하지 못했던 이유는
    전국시대의 중국의 7웅중 가장 강대했던 연나라와 대등할 정도로
    고조선의 국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막강했던 고조선에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체제입니다. 고조선은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연맹왕국의 단계에서
    멸망했습니다. 바로 이점이 문제입니다.

    이시기에 중국은 진나라의 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하여 중국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시황제의 폭정으로 인하여 얼마 안가 진은 망하고
    항우의 초와 유방의 한이 천하를 놓고 서로 대립합니다.

    처음엔 초가 주도권을 잡았으나, 후에 전세가 역전되어
    결국엔 한이 다시 한번 중국을 통일합니다.
    이때 한은 '중앙집권국가'였습니다.
    중앙집권국가란 말 그대로 중앙 곧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국가고
    나라전체를 왕이 다스리는 국가입니다.

    하지만 고조선은 '연맹왕국' 이었습니다.
    연맹왕국이란
    왕은 있지만 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것이 아니라
    각지의 군장들에게 권력이 나누어져 있으며,
    왕이 나라전체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군장들이 각 지역을
    분담해서 다스리는 형식의 국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 건국초반의 혼란을 수습하고 고조선 정벌에 나섭니다.
    처음에 고조선은 한을 맞아 아주 잘 싸웠습니다.

    이에 한은 정공법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다는 걸
    느끼고 택한 방법이 바로 '분열정책'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조선은 왕의 권력이 약하고,
    각지의 군장들에게 권력이 나누어져 있는 상태라
    한은 이를 이용하여 각자의 군장들을 이간질 시켜서 우리
    편끼리 싸우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끼리 싸우다가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한은 B.C 109년 왕검성을 포위합니다.

    이때 고조선의 왕은 우거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은 아직 알려진바 없으나,
    이때의 왕이 우거왕인 것으로 보아 우거왕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결국에 B.C 108년 고조선은 한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한은 임둔.진번.현도.낙랑의 한4군을 설치하고 60개의 법을 만들어
    고조선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고조선은 멸망하고
    후에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마한.진한.변한)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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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조선은 영토가 사방으로 수천 리에 이를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어요. 위만은 우수한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국경 지대의 이민족들이 고조선 쪽으로 침입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견제하면서 영토를 넓히는데 노력했어요.


    특히 고조선은 한반도 남쪽의 부족국가 진의 특산물을 중국의 한나라에 가져다 파는 중계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었어요. 고조선은 한나라와 진의 중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이 과일과 술 등 특산물을 직접 한나라에 가져가는 것을 막았지요. 결국 이러한 고조선의 태도가 한나라의 침입을 받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어요.

    중국에서는 한나라가 동북아시아의 최대 강국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는데, 특히 제7대 황제인 한 무제는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치고 있었어요. 이때 남쪽의 진이 한나라에 조공을 바치려 했는데,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이 이를 막고 못하게 했어요.


    한나라는 사신 섭하를 보내어 우거왕에게 남쪽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라고 했지만, 우거왕은 듣지 않았고 오히려 섭하를 죽여 버렸지요. 이에 노한 한 무제는 양복과 순체 두 명의 장군에게 5만의 군사를 주어 고조선을 침범하여 공격하게 했어요. 이때가 기원전 109년이지요.

    그러나 우거왕은 용감하게 한나라 군사와 맞서 싸웠어요. 한나라 장군 양복이 7천여 명의 군사로 왕검성 공격에 나서자 군사를 거느리고 친히 나서 무찔렀지요. 그 후로도 우거왕은 왕검성을 굳게 닫고 몇 달을 버티며 항전을 계속했어요.


    금방이라도 고조선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로 침공해온 한나라 군대는 당황하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고조선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한나라 장군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심각한 의견 대립이 생겼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무제는 제남태수 공손수를 급히 보내 사태를 수습하게 했어요. 공손수는 일단 모든 책임을 좌장군 순체에게 돌려, 그의 군대 통솔권을 몰수하는 한편, 순체에 대한 체포를 명령했어요. 그리고 순체의 군대를 누선장군 양복의 휘하에 보내어 양복이 모든 군사를 지휘하게 했어요.


    공손수의 사태 수습으로 한나라 군대의 사기는 한층 높아졌어요. 순체는 군사들을 독려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왕검성을 공격했어요. 이렇게 한나라 군의 공격 수위가 높아지자, 고조선을 이끌고 있던 지배층들도 끝까지 한나라와 싸워야 한다는 사람들과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항복하자는 사람들로 나누어지면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한나라의 군사력에 겁이 난 위만 조선의 재상 노인과 한음, 대신 삼과 장군 왕겹 등이 한나라에 항복할 것을 주장했어요. 우거왕은 이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투쟁을 계속했지요.


    그러자 이들 중 한음과 왕겹은 몰래 도망쳐 한에 투항했어요. 왕검성에 남아 있던 삼도 기회를 엿보다가 자객을 보내 우거왕을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했지요.


    그러나 왕검성은 아직 함락되지 않았어요. 우거왕의 대신인 성기가 왕검성 문을 굳게 닫고 끝까지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나라는 왕검성을 함락하기 위해 우거왕의 아들 장강과 재상 노인의 아들 최를 시켜 조선의 백성들을 설득하여 끝까지 항전하던 성기를 죽이게 했어요.


    기원전 108년 대제국 한나라의 침공에 1년간이나 버티며 항전하던 고조선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어요. 고조선이 있던 자리에는 한나라가 세운 낙랑, 임둔, 진번, 현도의 4군현이 설치되었지요.


    고조선은 멸망했지만 고조선 사람들은 중국의 지배를 순순히 따르지 않았어요. 틈만 나면 한나라 군사들을 고조선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투쟁했답니다.

    출처 : 재미있는 전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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