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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용있는불독38
위용있는불독3823.04.02

이순신은 어찌하여 백의종군하게 되었나요?

이순신이 왜군이 아니라 조선에 의해 잡혀가고 죽을 위기가 있었고 그에 따라 백의종군하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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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한 이유는 이순신이 이일에게 여러번 편지를 주었는데 이일은 번번히 이순신의 청을 들어주지 않아서 녹둔도가 많이 나빠졌는데 싸움이 터진걸 알자 이일이 겁이났습니다

    녹둔도가 큰피해를 입은 것은, 군사를 더 보내 달라는 이순신의 청을 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일은 조정에서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이순신이 수비를 소홀이 하여 녹둔도 싸움에서 여진족에게 크게 졌다는 거짓장계를 조정에 올려서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백의종군을시켰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순신은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번 승진하여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 사천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등의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됩니다.

    그러나 1597년 조정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일본이 흘린 거짓정보에 속아 이순신에게 가토 기요마사를 생포하라 명했으나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임을 알고 이에 응하지 않다가 파직되고 투옥되었습니다.

    이후 우의정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 하라는 선조의 명을 받게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잡히고 죽을 위기가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왜구들은 이순신이 조선의 대표적인 장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잡거나 죽이는 것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여러 차례 왜구들과의 전투에서 이긴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왜구들은 그를 잡거나 죽이는 것으로 조선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불명예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전리품 분배를 담당하던 조정에서 일어난 갈등으로 인해, 조정과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정 내부에서 이순신에 대한 불신이 일어나고, 이순신은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이순신은 왜군에게 잡히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의 충성심과 뛰어난 전략 덕분에 백의종군하게 되어, 나중에는 전사하면서도 조선의 승리를 이루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이순신의 이러한 업적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영웅으로 간직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왕인 선조는 이순신을 자신의 왕위 경쟁에 있어서의 경쟁자로서 여기고 있었지요. 그래서 원균의 잘못된 보고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믿고 이순신을 압송해서 죄를 추국 하고 백의 종군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선조 자신이 정통 왕위를 이어 받는 것이 아니라 후궁출신의 왕이기에 권력을 잃을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이런 우매한 사건을 벌이게 된 이유라고 생각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안내서가 발간됐다.

    경상남도에서는 이순신 세계화를 위한 이순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이순신 장군이 선조로부터 백의종군의 명을 받아 경남 합천 초계의 권율도원수부로 향하는 발자취를 아름다운 사진과 쉽게 풀어쓴 해설로 담아 책을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된 이순신 백의종군로 탐방 책자는 최초로 경남의 백의종군로를 알리는 책으로 그동안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백의종군로를 구체화하고 일반화하기 위한 첫발걸음으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이번 책자에는 ‘조선시대 동여도’를 통해 백의종군 행로를 알기쉽게 표기한 점이 눈에 띈다.

    이순신 장군은 정유년(1596년) 4월부터 백의종군을 시작하여 정유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받기까지 대부분을 경남의 하동, 진주, 산청, 합천에서 머물렀다. 이에 경남도는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던 곳곳을 찾아 남아있는 흔적들을 하나로 모아 이순신 백의종군로를 관광자원화 하기위한 사업들을 작년부터 추진해 왔으며, 2009년도는 일반화할수 있을것이라고 밝혔다.

    작년도는 역사고증을 통해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 및 유숙지등 흔적들을 고증해 냈으며, 올해도 지역의 향토사학자를 통해 구전스토리를 수집하고 백의종군로 관광자원화 성공추진을 위해 백의종군로 전문해설사 양성에서 한국청소년연맹단체 및 덕수이씨 종친회등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백의종군로 유적지탐방 사전체험 팸투어를 10여차례 개최했다.

    이번에 경남에서 추진하는 ‘백의종군로 복원사업’은 임진왜란 당시 백의종군한 이순신장군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사업으로 총사업비 142억원으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경남의 진주, 하동, 산청, 합천 4개 시군의 161.5㎞구간에 대하여 도로안내판 등 종군로 정비와 야영장 조성, 관련유적정비, 쉼터 등 휴식공간 조성, 유숙지 복원등 사업을 추진할 계획으로 2008년 4월 실시설계에 착수했으며, 내년 3월에 본격적 복원사업에 착공한다.

    도관계자는 “이번 백의종군로 책자 발간은 충무공의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구국정신을 함께 담고 있다. 아울러 남해안 시대에 발맞춰 경남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역사 체험의 현장을 전해줄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경남도는 남해안시대 핵신선도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순신프로젝트 1단계 첫 준공의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한 추진성과 보고회를 2일 오후 2시 30분 통영시 산양읍 舊 화양분교 운동장에서 도지사, 해군교육사령관, 도의회 경제환경문화위원장, 통영시장, 도단위 기관단체장,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덕수이씨 종친회장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게된 이유는

    둔전을 지킬 병력이 부족해서 조정에 부탁을 했지만

    거절당해서 여진족이 다 약탈하여서 결국에는

    이순신이 병력을 데리고 가서 다 가지고 오게 됩니다.

    한데 조정은 이순신이 하던 요청을 모른척하게 되어서

    이순신에게 식략을 빼았겼기 때문에 책임을 뒤집어 씌우다 보니

    그때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게 된것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이순신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의 군사 지도자로서 막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능력과 군사적인 성과에 대한 인정이나 보상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이에 이순신은 불만을 가지게 되어 조선 정부와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더해, 1597년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이순신은 마침내 병사들과 함께 적군과 싸우다가 포위당하게 됩니다. 그는 미리 각별한 의식을 갖춘 자신의 배를 불태우고, 일단 구조된 후 계속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이렇게 한창 싸우던 중 이순신이 그간 불만을 품고 있던 조선 정부와 싸워온 적으로 인해 잡혀가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기세를 이용하기 위해 조선 정부는 이순신을 군대의 최고 지휘관인 '종군'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이순신은 전력을 다하여 왜군과의 전투를 이어나가며 결국 임진왜란에서의 승리에 큰 공을 세웁니다.

    결국, 이순신이 왜군에게 잡혀가 죽음의 위기를 맞은 것은 이순신과 조선 정부의 갈등이, 그리고 이순신의 뛰어난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 것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