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원간섭기의 시기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과거 우리 역사는 주위의 다른 국가의 침략을 이겨 내면서
성장을 해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일제강점기가 있었다면,
고려시대에는 원간섭기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고려시대의 원간섭기는 언제부터 언제인지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갑섭기 기간이 궁금하군요.
일반적으로는 1259년부터 1356년까지 97년간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원간섭기는 고려의 대몽항쟁이 끝나고 원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반원운동에 성공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났을 때까지라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의 침략을 받아 약 30년 동안 항전을 벌인 뒤 1259년(고종 46)에 강화(講和)를 맺었고, 그로부터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의 반원운동(反元運動)이 성공할 때까지 원의 간섭을 받았다. 원간섭기(元干涉期)는 고려의 대몽항쟁(對蒙抗爭)이 끝나고 원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반원운동에 성공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났을 때까지이므로 일반적으로는 1259년부터 1356년까지 97년간의 시기를 가리킨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1270년(원종 11) 무신정권이 붕괴되고 개경환도(開京還都)가 이루어질 때까지 고려의 대몽항쟁이 계속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1273년(원종 14) 제주도에서 삼별초(三別抄)가 진압된 때를 대몽항쟁의 종료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는 무신정권(武臣政權)과 삼별초의 대몽항쟁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그에 따르면 원간섭기의 시작은 1270년 또는 1273년으로 늦추어진다.
원간섭기에 고려는 왕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원의 간섭을 받게 되어 자주성(自主性)이 크게 훼손되었다. 우선, 고려 영토 안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동녕부(東寧府),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 등 원의 지방관청이 설치됨으로써 영토의 일부를 상실했다. 이 가운데 동녕부와 탐라총관부는 고려의 요구에 따라 이른 시기에 반환되었으나 쌍성총관부는 1356년 무력으로 수복할 때까지 약 100년 동안 원의 영토가 되었다.
또한 원간섭기에는 고려 국왕의 계승이 원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 때문에 고려 국왕이 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국왕이 재위 중에 원에 의해 퇴위 당하거나, 퇴위했던 국왕이 복위하는 일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원의 간섭에 따라 고려의 정치제도가 3성(三省)-6부(六部) 체제에서 첨의부(僉議府)-4사(四司) 체제로 격하되었으며, 왕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격하되는 등 고려 전기 이래의 황제국 체제가 부정되고 제후국 체제가 정착되었다. 또한 원의 여러 전쟁에 필요한 군대와 각종 물자를 제공하게 되었으며, 공물(貢物)과 공녀(貢女)·엄인(閹人: 고자) 등을 원에 보내게 됨으로써 일반 민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간섭기는 고려의 대몽항쟁이 끝나고 원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반원운동에 성공해 원의 간섭을 벗어났을 때까지를 말합니다.
즉, 1259년부터 1356년까지 총 97년의 시기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와 몽골의 강화가 이뤄진 1259년 이후 고려의 반원 운동이 성공한 1356년까지 약 100년의 시기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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