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흔히 의자왕 하면 '삼천 궁녀'를 떠올리지만, 삼천 궁녀는 진짜 정확히 궁녀 3천 명이 아니라 궁녀를 많이 거느렸다는 문학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삼천 궁녀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도 조선 초기에 와서이다. 《삼국사기》에는 낙화암에 대해 아예 언급이 없고 《삼국유사》에서도 단지 '의자왕과 후궁들이 바위에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의자왕은 중국에서 죽었으므로 이 이야기는 잘못됐다.'고 일연이 언급한 데서 등장할 뿐이다. 조선 시대의 문인들이 낙화암과 백제를 소재로 한 글을 쓰면서 '백제가 멸망하면서 삼천 궁녀들이 이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구나'와 같은 표현을 남기곤 했다. 그런데 이 '삼천'이란 그냥 많은 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이러한 문학적 수사를 진짜 수치로 오해한 결과로 의자왕은 오늘날까지 색욕의 화신으로 낙인 찍혔으니, 언어의 관습이 변하며 만들어진 의도치 않은 역사왜곡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