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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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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이상좌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전기 화가 이상좌에 대해서 궁금한게 있는데요

노비 출신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화가로 유명해 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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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상좌는 조선의 화가로 호는 학포입니다. 원래 어느 선비의 노비였으나 어려서부터 그림 재주가 뛰어나 중종의 특명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인물화에 뛰어나 중종이 죽자 그의 초상화를 그렸고, 1546년에는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원종공신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이다. 자는 공우(公祐), 호는 학포(學圃),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의하면, 본래 어느 선비의 가노(家奴)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나 중종의 특명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한다.

    아들 이흥효(李興孝)도 화원이었으며 수문장을 지냈다. 가계에 대해서는 이상좌와 이배련(李陪連)을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와 다른 인물로 보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허균의 「이정애사(李楨哀史)」에 의하면 이정의 부친은 이숭효, 숙부는 이흥효, 조부는 이배련이라고 한다. 『패관잡기』에 의하면 이흥효는 이상좌의 아들이다.

    도화서 화원으로 1545년 중종어진을 이암 · 석경(石璟)과 함께 추사(追寫)하였다. 1546년에는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원종공신의 칭호를 받았으며, 1549년 중종어진을 석경(石璟)과 함께 추사(追寫)하였다. 1543년 예조에서 한나라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을 국역할 때 그 삽화를 그렸다고 전해지며, 기녀 상림춘(上林春)의 요청으로 신종호(申從濩)의 시에 기반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는데 그 내용으로 미루어 산수인물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허목의 『미수기언(眉叟記言)』에 의하면 수묵으로 그린 이상좌의 12폭 《불화첩》을 구하였는데 그 필법이 대단히 신묘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국내외의 유작들은 모두 전칭작들이다. 이들 작품은 대부분 인물중심으로 구성된 산수인물화와 도석인물화로서, 남송(南宋)에서 명대(明代) 절파(浙派)로 이어지는 화풍과 관계가 있다.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는 <송하보월도>는 지금 남아 전하는 조선 초기 작품들 중에서 남송 마원(馬遠)의 화풍과 밀접한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서, 당시 화단의 경향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좌 [李上佐]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2011. 11. 28.)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 의하면 본래 어느 선비의 가노였으나 어렸을때부터 그림에 뛰어나 중종의 특명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물화에 특히 뛰어나서 1545년 중종어진(中宗御眞)을 석경(石璟)과 함께 추사(追寫)하였으며, 1546년에는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원종공신(原從功臣)의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1543년예조에서 한대(漢代)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열녀전(烈女傳)』을 국역할 때 그 삽화를 그렸으며, 16세기 중엽에는 한양 기녀 상림춘(上林春)의 요청으로 산수인물도를 그리기도 하였다. 현재 그의 진필(眞筆)로 확인되는 작품은 한 점도 없으며, 현존하는 국내외의 유작들은 모두 전칭품(傳稱品)들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