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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굴뚝새243
뽀얀굴뚝새24323.08.31

판문점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궁금합니다.

1976년도, 제가 세상에 나기 전인데,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하여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질문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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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문점에서 일어난 도끼만행 사건은 1976.8.18공동경비구역 내 사천교(돌아오지 않는 다리)근방에서 초소를 가리고 있던 미류나무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유엔사 경비병들을 근거리에 있던 북한 초병들이 도끼 및 흉기로 무자비하게 공격한 사건으로 미군 대위 보니파스 등 2명이 숨지고 한국인 노무자들이 다친 사건입니다. 이것으로 미군이자 UN군이 다치자 UN군 사령관은 즉시 한국으로 입국 데프콘3(전쟁상태 선언)를 발동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으나 예상외로 강력한 미군과 UN군의 대응에 당황하여 북한군을 후퇴시키는 소극적 대처를 했을뿐 사과는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격노하여 사령관 최현을 불러 질책했고 김정일의 행동을 뒤집어 쓴 최현은 담당자들을 크게 질책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문제의 미루나무는 공동경비구역에서 25년생 15m높이의 나무로 대한민국과 북한 양측이 상대방을 감시하기 위한 시계확보에 지장을 주고 잇었습니다.

    유엔군 측 주한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 5관측소에서 제 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나 북한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 3초소 부근에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이를 제대로 관측할수 없었습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경 주한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조지 보니파스 대위를 위시해 소대장 마크 토머스 배럿 중위 등 2명과 부사관과 병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 1명과 부사관과 병 4명 등 1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 측 제 2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린 미루나무의 전지작업을 하는 대한민국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 경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조선인민군 박철 중위와 다른 장교 1명, 15명의 부사관과 병이 나타나 작업 중지를 요구했지만 미루나무의 위치가 유엔군 측의 관할에 속했기 때문에 보수작업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 판단해 보니파스 대위는 경비중대장 직권으로 작업을 계속 지시합니다.

    인근 초소의 인민군 부사관과 병 20명은 경비 병력을 요청받고 트럭을 이용해 도착, 박철 중위의 작업중지 재요구를 보니파스 대위가 거부하자 박철의 공격명령에 따라 인민군 부사관과 병들은 트럭에 실어 가지고 온 곡괭이, 몽둥이와 함께 노동자들이 작업에 쓰려고 가져왔던 도끼 등을 빼앗아 휘두르며 기습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 측 제3초소 앞에서 미군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 사병 4명으로 이루어진 11명의 장병은 한국인 노무자들의 미루나무 가지치기 절단 작업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 장교 2명과 수십 명의 사병이 나타나서 가지치기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UN 측이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 진행하자,자동차로 증원된 북한군 30여 명은 미리 준비한 도끼와 쇠망치를 휘둘러 2명의 미군 장교를 죽였다.

    이 사건 이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합동작전으로 보복해야 한다는 뜻을 스틸웰 당시 사령관에게 전달했다. 이후 유병현 당시 합참본부장이 스틸웰 사령관과 협의 끝에 ▷ 정전위원회를 소집해 항의를 한다. ▷강력한 경고를 한다. ▷도발행위가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일어났으므로 그 안에서 예방에 필요한 경고를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발생의 책임을 북측에 추궁하면서 범인 인도나 처벌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행동을 취하며 국지적인 전투도 불사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응책 초안을 잠정적으로 마련했다.


    이후 한미 양국은 8월 19일부터 이 같은 연합 대응책의 초안에 따른 단계적인 절차를 밞아나갔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8월 19일 제3사관학교 졸업식 훈시를 통해 북한이 재도발해 올 경우 즉각 응징할 것이라고 단호한 결의를 밝혔다. 이후 유엔군은 박대통령과 한국군 수뇌부와의 협의 끝에 문제가 된 미루나무를 8월 21일 오전 7시에 잘라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미군은 만일 이 과정에서 북한군이 대응해올 경우 개성과 연백평야까지 국지전 계획을 세워놓고, 미루나무 절단 작전을 완료했다.


    그리고 8월 21일 군사정전위에서 북한 측 수석대표가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관련해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구두전달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당시 구두전달한 메시지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또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쌍방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는 내용이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