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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5.16

반고흐와 폴고갱은 어떤 관계였나요?

유명한 미술가인 반고흐와 폴고갱은 같은 시대에 산 인물들인데요. 둘의 관계는 경쟁자 였나요? 아니면 스승과 제자, 친구 관계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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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둘은 그림그리는 동료사이입니다. 반고흐와 고갱은 아버지가 같은 미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후에 둘은 서로 다른 예술적 방향을 택하게 되면서 갈등이 생겨 결국 친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1888, Oil on canvas, 73×91cm, 반고흐 미술관

    이 그림은 두 사람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 하는데, 사실 시들어 버린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반 고흐의 모습은 늙고 초라해 보입니다. 고흐가 들고 있는 붓은 너무 가늘어 마치 바늘처럼 보이구요. 그리고 고갱은 반 고흐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그렸는데 이는 미묘하게 반 고흐를 낮추고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가 숨겨진 듯 보입니다.

    또 반 고흐를 해바라기와 연결시켜 그를 해바라기 화가로 간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매우 불만스러워 했고, 고갱이 자신을 술에 취한 것 같은 모습으로 그린 것은 모독이나 다름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불화는 극으로 치달았고, 그림에 대한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의견과 그로 인한 격렬한 논쟁은 더욱 커져만 가게 됩니다.

    고갱의 마르티니크 연작은 미술상 아르센 프와티에의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프와티에는 빈센트 반 고흐로부터 존중받고 있었고,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와도 거래하고 있었다. 테오는 900 프랑을 주고 고갱의 작품 세 점을 사서 자신의 사무실에 걸었다. 이를 계기로 고갱과 고흐는 친분을 맺게 되었고 같이 작업실을 쓰기로 하였다.

    테오의 주선으로 아를에 있는 고흐의 노란 집을 방문한 고갱은 9주 동안 함께 작업하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고갱은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짐을 싸고 나왔다. 고갱이 다른 사람들에게 쓴 편지엔 1888년 12월 23일 저녁 고흐가 고갱을 마구 비난하였다고 한다. 그날 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 고흐는 잘라낸 귀를 여러 겹의 화장지와 신문지로 싸고 고갱과 고흐 둘 다 안면이 있는 여성의 집에 찾아가 "잘 보관하고 나를 기억해 줘"라고 하면서 건냈다. 다음날 고흐는 아를의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고갱은 아를을 떠났다. 둘은 생전에 다시는 서로 만나지 않았지만 둘 사이의 연락은 이어졌고 1890년 고갱은 아를에서 멀지 않은 엔트워프에 화실을 마련하였다.[48] 고갱이 1889년 제작한 《자화상, 머리 모양의 물병》은 당시의 트라우마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훗날 고흐는 《에텐 정원의 추억 (아를의 여인들)》을 그리고서 이 작품이 고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지만, 고갱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고흐로부터 받은 영향은 아무것도 없다고 부인하였다.

    출처: zum 허브 폴 고갱 그리고 반 고흐, 그들의 운명적 관계에 대하여, 위키백과 폴 고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