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은 명성황후의 요청으로 인해 청나라의 개입으로 일본이 제대로 맞서지 않았으며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끝까지 싸웠지만 이기지 못였습니다. 결국 갑신정변의 주인공들은 이상에만 불타올라 현실적으로 혁명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탓에 정변을 일으키고 3일 만에 실패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갑신정변은 급진개화파들에 의해 주도된 정변으로 1884년 10월 17일 오후 9시경 별궁 방화를 시작으로 개시되어 10월 19일 오후 7시경 막을 내렸습니다. 이 단시간에 개화당은 급속도로 권력을 장악하고 인사를 단행하였고 정령을 반포하였습니다. 일본군 철수와 청국군 개입에 대비해 군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0월 17일 당초계획과 달리 별궁에서 방화와 4영사 처단에 실패하자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은 고종 침실로 들어가 우정국 변란을 알리고 경우궁으로 이어를 요청합니다. 또한 고종의 친필 칙서를 받아 일본병을 요청하여 고종을 호위하게 하였습니다. 자정을 넘겨 10월 18일 행동대원들은 경우궁을 찾아온 민씨 척족과 3영사를 제거하였습니다. 정변주도세력은 의정권 군권 치안권 재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인사를 단행하였습니다. 왕후는 경우궁이 좁다는 이유로 환궁을 요구했으나 김옥균 등은 방어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묵살했으나 김옥균이 나가자 일본공사는 환궁을 승인합니다. 10월 19일 개화당은 정령을 반포합니다. 이후 일본공사는 청일의 충돌을 우려하여 일본군을 물리려했으나 김옥균 등이 반대하였습니다. 이후 정군이 들이닥쳐 청일군사들의 충돌이 일어나고 일본공사와 김옥균 등은 인천으로 피신합니다. 10월 23일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9명은 일본으로 망명함으로써 갑신정변은 끝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