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 운동 이후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수립된 임시정부 중 하나로, 1919년 4월 11일 상해 조계지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1932년 훙커우 의거로 인해 일본의 압박이 심해져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 등 중국 각 지역을 옮겨다니며 광복을 맞이한 1945년까지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 김구선생을 주석으로 한 상해 임시정부가 들어섰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곳입니다. 상하이는 프랑스의 조차지로 중국정부로부터 비교적 영향을 덜 받는 곳이었고 항구도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상해임시정부가 들어선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자 결국 항주 류주 광주를 거쳐 중경까지 고난의 역사가 시작된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3.1 운동 이후 독립에 대한 민족의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설립되었고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용맹한 의거가 일어났던 곳이자 일왕의 생일 축하식에서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수뇌부에 큰 타격을 입힌 이 사건을 계기로, 침체되었던 독립운동은 활기를 띄게 되었던 곳이 상하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