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얄타 회담입니다. 38선의 획정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전세의 주도권을 장악한 연합국측이 마지막 군사작전을 마무리짓기 위한 방책과 세계 각지의 전후처리 문제들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1943년 12월 미국·영국·중국 등 3개국 수뇌가 카이로에서 회동하고, 종전이 예견되던 1945년 2월 소련을 포함한 연합국 수뇌들이 얄타에서 회동하였다고 합니다. .
우리나라의 38도선은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 협정에서 합의된 것입니다. 이 협정은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3차 남북한 군사회담에서 합의되었습니다. 정전 협정에 따라 남북한 사이에는 38도선을 경계로 한 전투적인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향후 평화적인 방식으로 남북한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의 38도 선을 생긴 회담은 1950년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열린 판문점 회담입니다. 이 회담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북한과 남한 간의 군사적인 대치 상황에서 조율을 도모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이 회담에서 북한 측이 38도 선을 국경으로 인정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전에 북한이 점령하고 있던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대부분 지역을 자유한도로 인정하는 형태로 일시적인 조정이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