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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1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물건을 전달해주는 택배와 같은 직업이 존재하였나요?

요즘 사람들은 택배없으면 살기 힘들다 할 정도로 택배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예전 우리나라의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물건을 전달해주는 택배와 같은 직업이 존재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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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6.02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광대토대왕은 5호 16국 시대 중국 남연의 왕인 모용초에게 천리인 과 천리마를 선물로 보냅니다. 천리인은 먼 길을 빠르게 잘 뛰는 사람인데 말은 당연히 사람보다 빠르지만 유지비가 비싼 것이 문제였으니 말을 대신해 달리는 직업이 생겼고 ,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보장사 라고 불렀습니다.

    폭설이 오거나 밥을 굶어 제대로 달리지 못해 하루라도 늦으면 벌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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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5호 16국 시대 중국 남연(南燕)의 왕인 모용초(慕容超)에게 ‘천리인’과 천리마를 선물로 보냈다. 천리인은 먼 길을 빠르게, 잘 뛰는 사람이다. 말은 당연히 사람보다 빠르지만 유지비가 비싼 게 문제였다. 말을 대신해 달리는 직업이 생겨났고,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보장사(報狀使)라고 불렀다. 폭설이 오거나 밥을 굶어 제대로 달리지 못해 하루라도 늦으면 벌금을 물었다. 최근 택배 종사자의 과로사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출처: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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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 예술가입니다.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총칭하는 명칭이며, ‘부보상(負褓商)’이라고도 합니다. 보상은 주로 기술적으로 발달된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이 비싼 사치품 등의 잡화를 취급한 데 반하여, 부상은 조잡하고 유치한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또한 보상은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였고, 부상은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보상을 ‘봇짐장수’, 부상을 ‘등짐장수’라고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대개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표준삼아 형성되어 있는 시장망을 돌면서 각지의 물화(物貨)를 유통시켰습니다. 그러나 대부상·대보상들은 수운(水運)과 우마차로 다량의 상품을 일시에 운반, 판매하기도 하였습니다.


    부상의 기원은 고대사회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사회의 물품 운반수단은 소와 말도 있었지만 주로 사람의 머리나 등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상단(負商團)이 조직된 것은 조선 초로, 이에 대해서는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개국에 공헌했기 때문에 그 조직을 허용했다는 설과, 이와는 달리 상류 계층과 무뢰한의 탐욕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쨌든 부상단은 적어도 조선 초에 조직되어 같은 마음으로 결속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뒤에도 조정에서는 국가 대사나 국난 위기 때 이들을 수시로 사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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