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개화정책이 본격화 되면서 개화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1882년 임오 군란 이후 청의 간섭이 커지면서 개화파는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로 나누어 집니다. 온건개화파는 청의 양무운동을 모델로 동도서기론에 입각하여 개화정책을 추진하자고 주장하고,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등을 대표합니다.
반면 청의 간섭을 배제하자는 취지에서 독립당, 개화당이라 부르며, 이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합니다. 급진개화파는 문명개화론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는 근본적 개혁을 주장합니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에 해당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