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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로맨틱한발발이14223.09.27

왜 우리의 문화유산인 직지심체요절을 프랑스에서 보관하고 있나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은 우리의 문화유산이고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는데요.

왜 우리의 문화유산인 직지심체요절을 프랑스에서 보관하고 있나요?

돌려주지 않고 있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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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2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한말 당시 주한프랑스공사이자 고서적 수집광이기도 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한 고물품들 중에 직지심체요절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911년,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이 재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베베르가 사망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습니다.

    1900년 파리 엑스포 한국관에 소개되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은 접어두더라도 오리엔트(근동) 지역에서 워낙 유물 유입이 빈번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직지 및 외규장각 의궤를 포함한 고서적들을 반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약속한 것은 사실이며, 실제로 의궤는 반환받았지만 직지는 반환받는 데 실패했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주도한 직지 반환 반대 시위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반출 경위가 약탈이 아닌 구입이었기에 명분도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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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한말 당시 주한프랑스공사이자 고서적

    수집광이기도 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한 고물품들 중에 직지심체요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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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면서 프랑스 선교사를 살해한 사건을 빌미로 프랑스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합니다. 강화도에는 외규장각이 있었고 병인양요로 인하여 외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우리의 중요문화재들이 프랑스에 의해 약탈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외교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문화재를 자기나라 파리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임대형식으로 의궤만 돌려주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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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한 말 당시 주한프랑스공사이자 고서적 수집광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한 고물품 중 직지심체요절이 포함되어있었고,

    1911년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이 재구입해 소장하고 있다가 베베르가 사망 후 그의 유언에 따라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를 포함한 고서적들을 반환할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했으나 실제 의궤는 반환되었지만 직지는 반환받는데 실패합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주도한 직지 반환 반대 시위 등으로 인해 어쩔수 없었고, 반출 경위가 약탈이 아는 구매였으므로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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