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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3.08.03

소안도가 왜 항일운동의 성지라고 불렀나요?

일제강점기 전남 완도에 있는 작은 섬인 소안도는 항일운동의 성지였다고 하는데요. 항일운동 기념탑도 있고 태극기 공원도 있던데, 이곳이 항일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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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섬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항일정신을 대표하는 섬으로, 이 섬에서만 독립운동가 88명이 배출, 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사람 20명입니다.

    또 당사도의 등대를 습격한 일로 이준하를 비롯한 소안도 주민들은 부속 도서인 당사도에 세워진 등대를 습격해 일본인 4명을 사살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완도 소안도 출신 정남국 선생의 독립운동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소안도에서는 일본인 지주들의 수탈에 항의하여 소작쟁의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으로 출발점은 지주들의 지나친 소작료 수탈로 토지계쟁사건이 승소하면서 소작료를 많이 거뒀던 신안의 섬들과 해남 무안 등지로 소작쟁의 운동이 퍼져나갔으며 이는 곧 항일저항정신으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에 소안도 소작쟁의 운동이 그 시초였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던 시절인 1886년 7월 25일 전남 완도군 소안도. 섬 주민 200여 명이 맹선리 짝지에 집단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가옥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 이 사건이 난 지 2개월 뒤 현장을 조사한 일본영사관 직원은 ‘주민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카무라와 그의 집을 습격해서 일본풍 건물과 가옥 3채를 불태우고 저장 창고에서 술과 된장에서부터 의류 가재도구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불태웠다’고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이 사건이 국토를 불법으로 유린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삶의 터전인 어장을 지키려는 소안도 주민들의 첫 의거 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