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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웃는두더지7
잘웃는두더지723.07.30

고려제일검 척준경이 실존인물인지?

어느 웹툰에 고려제일검이라고 척준경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요.

정말 고려시대때 고려제일검이라고 불린 사람이 실제로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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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재상. 본관은 곡주(谷州 : 곡산(谷山)).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위공(謂恭)의 아들. 어려서 집이 가난하여 학문을 배우지 못하고 무뢰배(無賴輩)들과 교유하여 서리(胥吏)를 원했으나 되지 못했다. 뒤에 계림공(雞林公 : 숙종)의 부(府)에 들어가 종자(從者)로 되었다가 추밀원 별가(樞密院別駕)로 임명되었다. 1104년(숙종 9) 평장사(平章事) 임간(林幹)을 따라 동여진(東女眞) 정벌에 나가 공을 세워 천우위록사 참군사(千牛衛錄事參軍事)가 되었고 다시 1107년(예종 2) 중군병마록사(中軍兵馬錄事)로 윤관(尹瓘)을 따라 동여진을 정벌할 때 석성(石城)ㆍ영주(英州) 싸움에서 대승하였고 또 길주(吉州)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워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郎)이 되었다. 이어 위위경직문하성(衛尉卿直門下省)에 임명되고 인종 초에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라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1126년(인종 4) 2월 이자겸(李資謙)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대궐을 범했으나 왕의 권유로 뜻을 바꿔 자겸을 잡아 귀양보내고 그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의 호를 받고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뒤에 정언(正言) 정지상(鄭知常)이 범궐(犯闕) 사실을 탄핵하여 암타도(巖墮島)에 귀양, 이듬해 곡주(谷州)에 이배(移配)되었다. 1144년(인종 22) 다시 조봉대부(朝奉大夫)ㆍ검교(儉校)ㆍ호부 상서(戶部尙書)를 받게 되었으나 얼마 뒤 곡주에서 병사하였다.

    출처 : 인명사전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곡산척씨의 시조로 집이 가난해 학문을 닦지 못하고 무뢰배들과 교유 후 계림공의 종자로 있다 추밀원 별가가 되었습니다.

    1104년 이래 동여진 정벌에 여러번 참가해 승전, 큰 공을 세우고 1117년 급사중으로 서북면 병마부사 , 1122년 위위경 직문하성, 1123년 이부상서 참지정사, 1124년 개부의동삼사 검교사도 수사공 중서시랑평장사가 되었습니다.

    1126년 이자겸과 함께 인종을 폐위하고자 군사를 이끌고 대궐을 침입했다가 왕의 권유로 뜻을 바꾸어 자겸을 잡아 귀양보내고 그 공으로 추충정국협모동덕위사공신이 되었으며 이후 권세를 휘두르다 1127년 좌정언 정지상의 탄핵을 받고 암타도에 유배, 이듬해 곡주로 이배되었습니다.

    1103년 죄는 있지만 공도 적지 않아 처자에게 직전을 돌려주었고 1144년 복권되어 조봉대부검교호부상서에 기용되었으나 곧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