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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이라이763
프로파이라이76323.08.17

임진왜란 때 '항왜'라 불리는 자들이 있었다는데 정확히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합니다.

영화 '명량'에서 보면 분명히 일본 사람인데 우리 조선의 말을 하며 우리편에 서있던 일본군역할의 배우를 기억합니다. 오타니 료헤이였던걸로 기억이 나는데요. 이러한 자들을 항왜라 불렀다는 것은 알고있는데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우리 조선의 편에 서게되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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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투항한 일본인을 항왜(降倭)라고 한다. 투항한 이후 조선으로 귀화하거나 친조선적인 성향을 띠는 이들이 많아서 항왜는 귀화왜(歸化倭), 향화왜(向化倭)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항왜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태조실록(太祖實錄)』이다. 1397년(태조 6) 4월, 항왜 나가온(羅可溫)에게 관직과 비단옷, 사모(紗帽)와 은대(銀帶), 신발을 내리고 나가온과 같이 온 12명에게도 옷을 내렸다고 한다. 7월에도 항왜 망사문(望沙門)이 3명을 이끌고 조선에 와서 이들에게도 옷을 내렸다고 한다. 항왜에게 관직과 물품을 내린 것은 왜구의 약탈을 막기 위한 조선 정부의 대응 전략이었다.

    임진왜란 시기 항왜인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일은 고달픈데 배는 고프다, 수자리가 힘들다, 사역이 과중하고 장수가 포악하다’ 등 일본군 내부의 문제로 탈영한 일본인들이 조선에 투항해 온 것이다. 강화 회담이 장기화되는 동안에 조선 정부가 전쟁 초 일본군 포로를 참수하던 정책을 바꾸어 조선군으로 편입시키거나 조선 내 노동력으로 활용하자, 투항하는 일본인이 늘어났다. 항왜는 조선에 투항한 후 조선군에 재배치되어 전쟁에 나가기도 하고, 조총과 화약 제조 기술을 가진 일본인들은 조선의 각 군영을 돌면서 기술 전수에 나서기도 하였다. 조선군에 편입되지 않은 항왜들은 농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귀화한 항왜들은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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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항왜란? 한국에서 항복한 일본인들을

    가리키던 용어로 좁은 의미에서의

    항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및 명에

    투항한 일본군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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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때는 항왜가 1만명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선조실록 30년)

    그리고 실록에 이름이 등장하는 항왜만 해도 40여명에 이르고요.

    이중 제일 유명한 사람은 한국이름 '김충선', 일본명 '사야가(沙也可)'입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때 제 2군 사령관 가토오 키요마사(加藤淸正 가등청정)의 좌선봉장으로

    조선에 쳐들어왔으나, 뛰어난 조선의 문물에 감동하여 귀순했다고 합니다.

    정유재란에 참가해서 큰 공을 세웠고, 이후 총포 개발을 맡기도 했습니다.

    선조때도 정헌대부 (정2품/오늘날의 장관급)에 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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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1592-1598)은 일본의 토요타 료다이가 주도한 일본군이 한반도로 침공하여 일어난 전쟁입니다. 이 전쟁 기간 동안 조선(한국)인들 중에서는 저항하는 데 관여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항왜"라고 불리며 일본의 침공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항왜"는 '왜(倭)'라는 단어를 일본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하여, 일본의 침공에 대한 반발과 저항의 의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용어는 조선인들 사이에서 사용되었으며, 정확한 인물들은 다양한 배경과 역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로 귀족, 성씨 인물, 무신, 민간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항왜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 저항뿐만 아니라 정치적, 외교적 노력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은 무신으로서 일본군을 막기 위한 전투를 이끌었고, 김시민은 왕권을 지지하며 정치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임진왜란의 항왜 운동은 조선의 독립과 주권을 유지하려는 국민적 의지와 더불어, 조선의 역사와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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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항왜는 조선시대 투항하여 울산 지역에 정착한 일본인을 말합니다.

    이는 사실 임진왜란 뿐 아니라 그냥 조선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입니다만 좁은 의미에서의 항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및 명에 투항한 일본군을 가리키며, 흔히 쓰이는 항왜는 이들을 가르킨다고 합니다.

    투항한 이후 조선으로 귀화하거나 친조선적인 성향을 띠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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