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명을 받고 종전의 가마와는 다른 계단식 가마를 만들었으며 세종이 이 가마를 타고 가던 중 가마꾼들이 중심을 잃는 바람에 가마가 부서져 이때문에 장영실은 의금부로 잡혀가 곤장 80대를 맞았다는 기록으로 미뤄 곤장을 맞은 후유증으로 죽었을 것이라는 추론만 할뿐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은 원래 양반인 아버지, 기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천민 출신이였습니다. 당시에는 천민 출신에 대해서는 출신을 기록할 방법이 없었지요. 다만 장씨 집안의 기록에는 1383년생 정도로 추측이 가능한데 그것이 맞다면 국법 으로 장영싱이 문책을 받을 당시 장영실은 이미 예순 살이었기 때문에 그 심한 문책 이후 건강이 안 좋아서 죽음에 이렀다는 가설도 가능 하지요. 그렇다면 아마도 1447-1448 년 정도가 그의 임종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