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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스컹크183
우람한스컹크18323.08.17

경복궁 중건에 흥선대원군이 집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흥선대원군은 당백전 발행과 전국 소나무 벌채등 막대한 재정과 자원이 들어 나라가 휘청이는데도 경복궁 중건에 몰입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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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권강화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경복궁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4년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했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는데, 흥선 대원군이 왕실의 위엄을 높이기 위하여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본궁(本宮)으로서 태조가 1395년(태조 4)에 창건한 것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燒失)된 이후, 역대의 왕은 재정이 부족하여 재건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19세기 초의 순조(純祖)·헌종(憲宗) 때에도 재건계획을 세우기는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고종(高宗)의 즉위와 함께 당시의 섭정(攝政)이던 흥선대원군이 단안을 내려 경복궁 중건계획을 발표하고, 1865년에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하여 공사에 착수하였다. 대원군은 조선 말기 이래로 외척(外戚)의 세도에 밀려 추락된 왕실의 존엄과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경복궁의 재건을 서둘렀던 것이다. 공사 착수 당시에는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으나 대원군은 이에 굽히지 않고 총책임자가 되어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처음에는 일반 백성과 종친(宗親)들에게서 원납전(願納錢)이라는 기부금을 받았고, 부역(賦役)에도 신중을 기하여 민원(民怨)을 크게 사지 않으면서 공사를 진행하려 하였다. 그러자 백성들도 어느 정도는 이에 호응하였으며, 대원군은 부역으로 일하고 있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동대(舞童隊)·농악대·남사당(男寺黨) 등을 동원하여 이들을 격려하였다.


    그러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차츰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큰 목재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왕릉(王陵)의 목재도 베어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애써 모아온 거목(巨木)을 쌓아둔 목재장(木材場)에 불이 나서 많은 목재를 거의 다 태워버린 일도 있었다. 그런데도 대원군은 뜻을 굽히지 않고 이를 강행하니 여러 무리가 뒤따랐다.


    재목은 강원도·함경도 등의 먼 지방에서 운반해 와야 했으며, 석재(石材)도 각처에서 모아들여야 했다. 심지어 서낭당의 큰 나무나 석재, 양반 집안의 선영(先塋)의 목재까지도 강제로 거두어들여야만 했다.


    또 문제는 건축자재의 확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공사비의 염출이 더 큰 문제였다. 이를 충당하기 위하여 조정에서는 공공연히 벼슬자리를 팔게 되었으며,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하기까지 하였다. 당백전은 오늘날의 통화증발(通貨增發)과 같은 폐해를 낳게 하여 물가앙등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대원군의 끈질긴 고집으로 1868년에 공사는 사실상 완성되었다.


    중건된 경복궁은 조선 말기의 건축·공예·미술의 결정체(結晶體)라고 할 만한 것으로서 오늘날에 이르도록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 당시에는 왕족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국가의 경제적인 타격 또한 막심하여 대원군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권강화를 위해 지었다고합니다.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마음먹었다고하네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집착한 것은 실추된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그의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여러 성공에 고무된 흥선대원군은 왕권의 강화와 왕실의 위상을 위해 경복궁을 중건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왕실의 권위는 많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복궁의 중건을 서둘러 하고자 했던 것인데 이것은 왕실의 존엄을 과시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고종 2년(1865) 4월에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하였으며, 스스로 진두에서 사업을 지휘하게 됩니다. 당백전 이라는 화폐까지 발행해 가며 필요한 자금을 모으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불타고 난후 궁의 재건 사업에는 엄청난 재원이 들어야 하기에 어느 왕도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왕실의 권위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몰입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경복궁은 조선의 왕궁으로,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경복궁은 소실되었고, 흥선대원군은 이를 복원함으로써 조선의 정통성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둘째,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가 팽배해 있었고,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를 종식시키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경복궁 중건을 추진했습니다.

    셋째,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통해 조선의 국력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서양 열강의 침략에 위협을 받고 있었고,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통해 조선의 국력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