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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즐거운가오리18823.05.26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불탄 후 방치되었던 경복궁을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 중건했다고 알고 있는데

경복궁을 중건한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요?

당시 경복궁을 중건함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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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6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마음먹었어. 조선의 중심 궁궐이었던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는데, 다시 짓는다는 것이 워낙 큰 사업이라 어느 왕도 선뜻 나서지 못했어.

    그러나 대원군은 나라가 바로 서려면 왕실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복궁이 다시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결정했어.

    그러나 이 사업은 흥선 대원군의 의도와는 다르게 왕실의 위엄 회복은 고사하고 자신의 정권만 위태롭게 만들고 말았어. 경복궁을 새로 짓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자, 대원군은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거두어 부족한 경비를 해결하려고 했어.

    그런데 이게 탈이 났지. 기부금은 원래 내고 싶은 사람만 내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반 강제적으로 거두어들여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았어.

    그래서 사람들은 원해서 내는 돈이란 의미를 가진 ‘원납전(願納錢)’을 원성을 사는 돈이란 뜻의 ‘원납전(怨納錢)’으로 고쳐 부르며 기부금 징수를 비난했어. 뿐만 아니라 대원군은 부족한 경복궁 중건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당시 사용하던 화폐인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를 지닌 당백전1) 을 발행했어.

    그러나 당백전의 발행은 금융 질서를 무너뜨리며 사회 혼란만 부추기고 말았어.

    여기에 백성들은 경복궁 중건 사업에 반 강제로 동원되어 힘든 일을 해야 했으며, 건물의 기둥에 쓰일 큰 나무들을 양반들의 묘지 주변에서 강제로 베어다 사용하는 바람에 경복궁 다시 짓기 사업은 양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면서 흥선 대원군의 인기를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지.

    결국 경복궁 중건 사업은 왕실의 위엄을 높인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강하게 추진되었지만, 수많은 안티 세력을 만들어 내며, 국가 재정 악화의 원인이 되어 흥선 대원군의 정치 생명을 단축시키고 말았어.

    [네이버 지식백과]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세운 까닭은? (장콩 선생님과 함께 묻고 답하는 한국사카페 2, 2011. 9. 30., 장용준(장콩), 서은경)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음 안동김씨 풍양조씨 등 60여년 세도 정치로 무너진 조선왕조 권위를 다시 살리려 경복궁을 중건하였습니다.

    여기에 백성들은 경복궁 중건 사업에 반 강제로 동원되어 힘든 일을 해야 했으며, 건물의 기둥에 쓰일 큰 나무들을 양반들의 묘지 주변에서 강제로 베어다 사용하는 바람에 경복궁 다시 짓기 사업은 양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면서 흥선 대원군의 인기를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경복궁 중건 사업은 왕실의 위엄을 높인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강하게 추진되었지만, 수많은 안티 세력을 만들어 내며, 국가 재정 악화의 원인이 되어 흥선 대원군의 정치 생명을 단축시키고 말았습니다.

    출처 - 지식백과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합니다. 조선의 중심 궁궐이던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다시 짓는 것이 큰 사업으로 어느 왕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대원군은 나라가 바로 서려면 왕실의 권위가 바로 서야하고 그러기 위해 경복궁이 다시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해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합니다.

    그러나 경복궁을 다시 짓는데는 큰 돈이 필요해 대원군은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거두어 부족한 경비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는 반강제적인 것으로 사람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또한 경복궁 중건 경비 마련을 위해 당시 사용하던 화폐인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를 지닌 당백전 발행으로 금융질서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또 백성들은 반 강제로 동원되어 일했고 건물의 기둥에 쓰일 큰 나무들을 양반들의 묘지 주변에서 강제로 베어 사용해 양반들까지 불만이 높았습니다.

    결국은 국가 재정악화와 백성들의 불만으로 대원군의 정치 생명이 단축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재건을 꼭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바로 무너진 조선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고종의 무너진 왕권을 바로 세워 주고 나아가서는 조선의 권한을 바로 세워야 조선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선은 그 이후 채 60여 년을 가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지요.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복궁 중건 당시 그때의 일들을 기록한


    《경복궁영건일기》를 보면 해당 내용이 나옵니다.



    경복궁 중건에는 목수를 비롯한 장인들과


    담군ㆍ모군과 같은 임금노동자,


    그외 자발적인 지원자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장인의 경우, 1일에 3전 8푼을 지급받도록 했고


    이는 19세기 조선에서 있었던 토목공사에서


    일반적으로 받았던 임금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많지도, 적지도 않은 평균이란 거죠.



    담군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인부로서,


    중건에 쓰일 석재와 목재를 날랐습니다.


    이들은 하루에 4전을 받도록 정했습니다.


    모군은 하루 2전 5푼이었습니다.


    * 모군은 쉽게 말해 모집한 근로자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전기와 달리


    일반 백성의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기 어려워,


    이렇게 돈을 주고 고용하는 방식이 자리잡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정왕후는 경복궁 중건을 명하면서 총책임을 흥선대원군에게 맡김으로써 흥선대원군에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흥선대원군은 고종 연간에 한 번도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전면에 드러나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막후에서 상당한 실력을 행사하였다.

    -출처:우리역사넷